[과학으로 세상보기] 성인을 위한 과학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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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기(磁氣)와 전기(電氣)의 상호변환을 믿었던 19세기의 영국 과학자 패러데이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하던 중, 자기장 속에서 도선을 움직일 때 전기가 유도되는 전자기 유도현상을 발견했다. 하루는 이를 청중에게 설명하는데, 난해한 설명에 지루해하던 젊은 정치인이 패러데이의 강연 도중에 질문을 했다. "좋습니다. 그런데 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 겁니까□"

패러데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세금을 매기는 날이 곧 올 것입니다. "

패러데이의 전자기유도는 발전기로 이어졌고 각국의 정부는 발전기가 만든 전기 때문에 엄청난 세금을 걷게 되었다.

이것은 순수과학 연구가 기술적 발전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과학자들은 이런 예를 들면서 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과학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과학자들을 만족케하는 수준이 아니다.

순수과학이 중요하다는 데에 공감하는 사람일수록 이제는 이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왜 흡족하지 못한지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용한 것을 찾아서 연구하는 공학기술과 달리 순수과학 연구의 효용은 예측하기 힘들다. 과학연구는 가끔 혁명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낳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은 대부분 그 효용이 확실하지 않다.

패러데이의 전자기유도가 발견된 지 30년이 지난 다음에야 발전소용 발전기가 만들어졌듯이 몇년 혹은 몇십년이 지나야 기술로 응용되는 과학연구가 많다.

그래서 목전의 이윤을 생각하는 기업은 순수과학 연구에 지원하기를 꺼린다. 기업이 지원하는 과학은 반도체 과학, 화학의 몇몇 분야, 생명과학 등 기술적 응용이 상대적으로 확실한 부문에 국한된다.

따라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과학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정부다. 그런데 전기에 세금을 부과하던 그 무렵부터 거꾸로 순수 과학에 대한 지원에도 엄청난 세금이 필요해졌다. 과학연구의 규모가 커졌고 교수에 딸린 학생이 늘어났으며 사용하는 기자재는 고가품이 되었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 유권자(즉 납세자)를 의식해야 하는 정부는 그 효용이 당장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과학연구에 많은 돈을 쓰는 것보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기술에 대해서 집중 지원을 하는 등 효과가 가시적이고 예측이 용이한 정책을 선호한다.

이러한 요소를 고려해볼 때 순수과학 연구에 대한 사회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은 과학연구의 가치와 효용에 대한 튼튼한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과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주제가 시민을 위한 과학문화의 창조와 보급이다.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과학강연은 어린 학생들로 만원을 이룬다. 서점의 교양과학서적 코너도 역시 학생들로 북적인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시절까지 과학이나 과학자에 대해 동경을 품고 있다가도 대학생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과학과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 시민들의 실상이다.

과학단체에서 내는 잡지는 과학자들의 서고에만 꽂히고 성인을 위한 과학잡지 하나, 성인의 시선을 잡아둘 교양 과학TV 프로그램 하나 변변한 것이 없다.

과학은 음악이나 스포츠처럼 즐길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과학강연을 들으러 가는 부모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고 대부분 시민들에게 과학은 삶과 무관하다. 시민이 과학을 심각하게 생각할 때는 공해.핵문제.유전자 변형식품.인간 복제 등 과학이 삶을 '불편하게' 만들 때뿐이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는 한 과학을 높게 사고 연구를 지지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힘들다. 과학자들은 시민과 정치인에게 과학이 가치 있고 유용한 활동이라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과학을 시민들의 삶의 일부이자 삶을 풍성하게 하는 문화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과학문화는 이제 성인들을 겨냥해야 한다.

홍성욱 토론토대 교수 · 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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