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예술의전당 '예술은 뒷전 행정이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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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예술의전당(사장 김순규)이 공석 중인 공연예술감독(상임)과 전시예술감독(비상임)의 후임으로 공연.음악.전시 등 3명의 비상임 예술감독을 임명한 일을 놓고 뒷말이 많다.

전문화라는 미명 아래 오히려 예술감독을 '허수아비' 로 만들었다는 비난과 함께, 상임 예술감독제 실시 6년 동안 계속돼온 '예술' 과 '행정' 의 갈등과 반목이 '예술' 의 패배로 끝났다는 자조섞인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예술감독을 비상근 체제로 바꾸는 대신 공연사업국장직을 신설하고 홍보섭외팀을 홍보마케팅팀으로 확대하는 것이 이번 직제개편의 골자다. 신임 예술감독은 프로그램.캐스팅에 대한 '자문' 과 대관심사위원장을 맡는다. 주 2회 출근하고 교통비와 수당으로 월 1백만원을 받는다. 지금까지 대관심사는 예술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해왔으니 사실상 '예술감독' 이 아니라 '예술자문' 인 셈이다.

예술의전당측은 "그동안 상근 예술감독은 할 일이 마땅치 않아 일반 행정업무도 맡아왔는데 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 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공연장의 예술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것이 '행정업무' 는 아니다.

어쨌든 작품 제작에 직접 참여하면서 공연사업본부장까지 겸했던 전임 예술감독에 비하면 신임 예술감독의 입지는 훨씬 좁아졌다. 공연장의 핵심부서인 공연기획팀.공연장운영팀.홍보마케팅팀.무대기술팀이 공연사업국장의 지휘를 받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 예술감독의 역할에 대해 내부비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 직원은 전임 예술감독이 직접 연출한 몇몇 국내 초연 오페라와 연극의 뒷바라지로 예술의전당 전체가 '몸살' 을 앓았다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예술의전당' 에서 예술과 행정이 대립하고 갈등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예술이다. 홍보.고객관리 등 마케팅 기법이 아무리 뛰어나도 예술정책 자체의 결점을 보완해 줄 수는 없다.

예술감독은 바로 이 예술정책을 판단하고 이끌어나가는 자리다. 분야를 조각조각 나눈다해서 전문화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며, 흥행성이 검증된 작품이라 해서 매번 상업적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번 개편이 미심쩍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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