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으로 삽교호도 20년만에 바닥 드러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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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동안 물걱정 한번 안했던 충남 최대의 곡창지대인 예당평야에도 긴긴 가뭄에 비상이 걸렸다.

1979년 완공된 후 예산.당진의 평야와 서산.아산 등 5개 시.군 2만여 농가(농지 1만8천㏊)에 물을 공급해온 삽교호가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지역 강수량이 평년 수준(2백㎜)의 20%인 40㎜에 불과한데다 삽교.곡교.무한천 등 상류에서 흘러드는 유입량이 크게 줄어 삽교호 바닥은 거북등처럼 갈라졌다. 지난달 하순 저수량(유효 저수량 6천3백만t)이 급격히 줄기 시작한 후 10일 현재 저수율은 사상 최저인 15%로 떨어진 상태다.

이에 따라 지난 7일부터 6㎞ 떨어진 아산호(저수율 64%)에서 매일 14만t의 물을 공업용수 관로를 통해 공급받고 있지만 하루 방류량(1백25만t)에는 턱없이 부족해 급수를 일시 중단하는 사태를 빚었다.

사흘 만에 농업용수 공급이 재개된 10일 밤 이곳 분위기는 극심한 가뭄 만큼이나 거칠고 메말랐다. 삽교호를 관리하는 농업기반공사 직원들과 지역 농민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일부에서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농업기반공사측은 극심한 물부족을 겪고 있는 당진군 석문면 등 수로 끝 하류지역 마을까지 물을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 대부분 농민들이 귀가한 오후 6시에 물 공급을 시작했다.

삽교호에서 40여㎞ 떨어진 석문면 농가에 물이 도착하려면 콘크리트 용수로를 통해 20시간 가량 이동해야 하는데 경유지역의 수문이 개방될 경우 중간에서 물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흘 동안 물 공급이 중단되면서 용수 부족에 애를 태웠던 삽교호 인근 상류지역 농민들도 저녁 식사를 거른 채 논물대기에 나서면서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졌다.

농업기반공사측은 2백40명의 직원을 당진.예산.서산.아산.홍성군 등 5개 시.군에 이르는 4개 간선 농업용수로(총연장 76㎞)의 수백개 수문에 배치해 경유지역 수문 개방을 통제했지만 상류지역 농민들은 "우리도 당장 급하다" 며 맞섰다.

당진군 신평면 매산리 농민 李모(53)씨는 "우리 마을이 삽교호와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경지정리를 하는 바람에 모내기가 늦게 끝났다" 며 "용수사용을 막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저수량(9백여만t)으로는 오는 19일부터 농업용수 공급이 전면 중단될 수밖에 없다.

당진=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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