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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도종환 '잎차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하늬바람에 모과나뭇잎이 올라오는 걸 보니

이파리 하나 내는 데도 순서가 있다

해 뜨는 쪽으로 하나 내보내면

해 지는 쪽으로도 하나를 내고

그 사이에 양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잎 하나를 꼭 세워둔다

좌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꼭 그렇게 잎을 낸다

밤나무나 동백나무도 오른쪽에서 잎이 나면

다음에는 왼쪽에서 잎이 돋는다

마주나는 건 마주나고 돌려나는 건 꼭 돌려난다

하찮은 들풀이나 산기슭 작은 꽃들도

꽃잎이 다섯 개인 건 꼭 다섯 개만 내고

여덟 개인 건 여덟 개만 낸다

- 도종환(1954~ )의 '잎차례' 중

살아가는 만큼 시를 쓴다는 것. 그것이 시인에게는 특유의 빛깔이 되기도 하고, 시인을 가두는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도종환 시인만큼 열심히 사는 시인을 나는 이 나라에서 보지 못했다. 농촌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랴, 충북 지역의 각종 문화행사들을 치르는 데 앞장서랴, 또 밤에는 글을 쓰랴, 멀리서도 바쁜 발걸음이 보인다.

나뭇잎이 돋는 사소한 일에서 시인은 세상의 질서와 이치를 발견한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건강한 균형감각을 읽으며 독자들은 삶의 원리를 한 수 배우게 된다.

안도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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