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호치민 평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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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호치민 평전』은 베트남의 해방 영웅 호치민이 지닌 혁명가로서의 열정과 그에 못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영웅담에 따라다니는 가식적인 일화 보다는 제국주의의 질곡에서 허덕이는 동포들에 대한 애정, 이들과 함께 그 압제를 걷어 치우려는 혁명가로서의 고뇌에 초점을 맞췄다.

베트남의 험난한 독립과정에서 미국계 첩보요원으로 직접 그를 만나고 많은 문제를 함께 상의했던 저자가 소개하는 호치민은 베트남의 민중들이 그를 부를 때 사용했던 '박 호(호 아저씨)' 라는 호칭만큼 다정한 사람이다.

볼셰비키 혁명, 중국 건국을 이끌었던 레닌과 마오쩌둥(毛澤東)이 일반 민중이 범접하기에는 거리가 먼 영웅이었다면 이 책에서 드러나는 호치민의 모습은 민중에 너무 친숙한, 이른바 '국민 영웅' 이다.

책의 제목이 '평전' 이라는 꼬리를 달고 있는 점(원저의 제목은 그냥 Ho Chi Minh이지만)은 저자의 의도가 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해석하는 혁명가로서의 호치민은 이렇게 묘사된다. "역사상 어떤 시점에서 실현 가능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 레닌도 이런 능력이 있었지만 호치민은 더 특별한 것이 있었다. 즉 인간의 역량뿐 아니라 한계까지 고려하는 능력이 있었다. 공자는 이를 '서(恕)' 라 했다. 영어로는 대응할 단어가 없는데… 모든 인간이 형제라는 개념을 아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호치민의 직관은 머리보다는 가슴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

응엔신꿍이라는 이름으로 베트남 농촌의 중류가정에서 태어난 호치민의 초년기 경력은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 저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호치민은 20대 초반까지 미국과 유럽을 돌아다니며 선원생활을 했고 호텔의 조리사보조로도 일했다.

관료제도에 환멸을 느낀 아버지 응엔신삭의 교육방침에 의해 제대로 전통 한학을 배우지 않았지만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 어려서부터 광범위한 정보를 습득했고 어떤 관심 분야든 수월하게 해결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됐다" 는 것이다.

남의 능력과 더불어 한계까지 헤아릴 줄 아는 성품에다가 어렸을 때부터 갖춘 다양한 지식과 견문으로 호치민은 인도의 간디와 같은 반열에 오를 만한 '성자(聖者)' 로서도 그려진다.

호치민의 이같은 품격은 프랑스와 미국.중국.소련의 이해가 엇갈리는 해방공간에서 탁월한 협상력으로 이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발생하는 동포간의 노선 투쟁을 규합하는 응집력으로도 나타났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이와 함께 호치민에게는 어느 상황, 어느 적에게도 굽히지 않는 강인함이 함께 존재했다. 참된 영웅으로서의 모든 면모를 다 갖춘 셈이다.

저자는 말미에 '그의 강철 같은 의지 앞에서는 높은 산도 몸을 낮춘다' 라는 한니발의 묘비명으로 그에 대한 찬사를 대신한다.

여러 증언을 통해 그려지는 호치민의 면모를 접해 가노라면 저자의 이같은 송찬(頌讚)이 결코 과장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원저는 95년에 국내에 한 번 소개됐으나 이번에 새 번역으로 단장했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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