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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식코와 미국의 자존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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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 식코 덕분에 오바마 대통령과 그 반대 세력의 건강보험 개혁 공방전이 남의 나라 일 같지 않게 흥미진진했다. 결국 오바마의 승부수는 성공했다. 이상이 현실을 이긴 드문 케이스다. 하지만 바둑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제 시작인 것으로 보인다. 식코에 따르면 미국의 유아 사망률은 서구 최고다. 가난한 중남미보다 높다. 국민소득 중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세계 최고인데 매년 1만8000명이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간다. 손가락 두 개가 잘려 병원에 간 남자의 모습은 코믹하다. 중지 봉합에 6만 달러, 약지 1만2000달러라는 말에 약지만 봉합한 그 남자가 화면 속에서 웃고 있다. 병력이 있으면 보험 가입이 안 된다. 보험 가입자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큰 사고를 당했는데 보험사로부터 어떤 이유로든 승인 거부를 당하면 수십만 달러의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해 버린다. 보험사들은 계속 돈을 벌고 덩치는 계속 커진다.

식코를 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 건강보험이 너무나 고마워진다. 영국이나 프랑스·캐나다처럼 완전 공짜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언제 이런 제도를 갖췄나 싶어 대견해진다.

18년 전 힐러리 클린턴도 이 같은 미국 의료보험체계를 개혁하러 나섰다. 그러나 국회의원 수의 네 배에 달하는 민간 의료보험사 로비스트, 막강한 제약 업계와 의사협회의 격렬한 반대에 부닥쳤다. “의료 시스템에 정부가 개입하는 건 사회주의다. 의료 사회화의 실상을 보려면 캐나다를 보라.”(정작 캐나다에선 의료보장을 이룩한 토미 더글러스가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으로 선정됐다.) 힐러리는 눈물을 머금고 물러섰다. 시스템에 얽힌 사람이 너무 많았다. 돈도 많고 힘도 너무 셌다. 식코는 이렇게 비꼰다. “힐러리는 침묵의 대가로 상원에서 두 번째 많은 제약협회 기부금을 받았다. 1등은 부시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 병원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배에 태워 쿠바로 간다. 9·11 때 폐 질환에 걸린 소방대원도 있다. 아바나 종합병원은 이들의 이름과 생년월일만 묻고 정성껏 치료해 준다. 평소 120달러에 사던 약이 5센트라는 말에 암에 걸려 파산한 여자는 눈물을 쏟는다.

쿠바 부분은 물론 각본에 의한 연출이다. 관타나모에서 잘 치료받는 9·11 테러범과 치료조차 거부된 9·11 영웅을 대비시키고 있다. 미국이 역사상 가장 사악한 나라로 꼽아온 쿠바의 의료시스템조차 미국보다 월등하다고 말하고 있다.

식코의 이런 편향을 감안하더라도 미국 의료 시스템은 피곤해 보인다. 사방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돈을 밝힌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 점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걸 고치지 않고서는 미국의 자존심을 말할 수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심은 아직 오바마 편이 아닌 것 같다. 공화당이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2라운드가 어디로 갈지 궁금하다.

박치문 바둑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