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담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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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담배는 1492년 미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인디언들로부터 선물 받아 유럽에 전파했다. 당시 담배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유럽 상류층에 급속히 퍼졌다.

심지어 어린이들에게 강제로 담배를 피우게 한, 지금 생각하면 기절초풍할 일까지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1백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 사람들이 담배를 처음 들여왔다.

'담배는 술을 전해 준 백인들에 대한 원주민의 복수' 란 말이 있다. 누군가 나중에 지어낸 말이겠지만 담배와 술의 폐해, 특히 현재 전지구적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제3세계의 알콜 중독과 담배를 둘러싼 선진 각국에서의 진통을 감안하면 그럴싸하다.

담배는 이제 말 그대로 백해무익(百害無益)한 것으로 판명났다. 담배 연기엔 무려 4천가지나 되는 독성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데, 이중 20여종은 A급 발암물질이라는 게 의사들의 경고다. 이 때문에 담배는 모든 암과 성인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흡연자의 폐암 발생률은 비흡연자보다 17배나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며칠 전엔 우리나라 40대 돌연사의 주범이 흡연이란 보도도 있었다.

그러니 담배 피우는 사람은 요즘 전세계 어딜 가나 천덕꾸러기 신세다. 간접 흡연 역시 해롭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흡연자들이 점점 외톨이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공공 장소에서 흡연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전세계에 가장 많은 담배를 공급하는 미국인들이 자국 내의 흡연에 대해선 유난을 떠는 게 얄밉기는 하지만 어쩔 것인가. 흡연자 입장에서 그나마 사정이 좀 나은 유럽에서도 흡연자들의 설 땅이 점점 좁아지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이 담뱃값을 올려 구멍난 의료보험 재정을 확충키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갑당 2원씩 부과하던 건강증진기금을 1백~1백70원으로 대폭 인상할 모양이다. 몸에 나쁜 것이니 값을 좀 올려도 큰 반발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걸까.

물론 대부분의 '골초' 들은 이 정도의 담뱃값 인상에 끄떡도 않는다. 그러나 담배 한 대로 시름을 덜어가며 오늘도 거북등 같은 논에 물을 대느라 여념없는 농부들이나 공사판의 날품팔이 노동자들에겐 결코 작은 부담이 아니다. 상처받은 국민의 가슴을 쓰다듬어 주는 게 정치라면 담뱃값 인상을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는 없을텐데….

어쨌든 이런 저런 더러운 꼴 안 당하는 방법은 담배를 확 끊는 것이다. 마침 오늘이 세계 금연의 날이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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