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영화 '야드비가의 베개' 관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나처럼 바보 같은 인간도 없을 거야. 아내에게 당하고, 친구는 배신하고. " 헝가리 영화 '야드비가의 베개' 에서 남편 온드리스(빅토르 보도)가 세상을 탄식하며 뱉은 말이다. 이렇듯 '야드비가…' 는 남녀의 사랑에 얽힌 비극을 다루고 있다.

겉만 보면 단순한 치정극일 수 있다. 아내인 야드비가(일디코 토트.사진)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온드리스, 결혼 후에도 첫사랑이었던 변호사 프란시(로만 루크나르)와 관계를 계속하는 야드비가 - 이 세 사람 사이의 엇나가는 사랑이 주요 내용이다.

최민식.전도연 주연의 '해피 엔드' 와 다르다면 남편이 아내와 그 정부(情夫)에게 복수를 하지 않고 스스로 파멸해간다는 점.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서 얻은 아이까지 키우는 '일부종사(一婦從事)' 형의 남편이다.

우리의 눈으론 "과연 저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만큼 문화적인 간극이 강하게 느껴진다. 헝가리의 넓은 초원, 다소 삭막한 시골 정경, 성에 관한 걸쭉한 농담 등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돋운다.

여기에 헝가리의 민족분쟁.전쟁 등 사회적 요소가 배경으로 깔리면서 '야드비가…' 는 통속극 차원을 훌쩍 넘어선다. 변화하는 정치현실에 무력하기만 한 서민의 일상을 담고 있다. 격렬하게 대립하는 등장인물의 갈등도 예리하게 포착했다.

또 관습.상식을 깨며 만족스러운 성을 추구하는 야드비가의 급진적 행동에서는 일종의 페미니즘마저 연상된다. 모스크바.카를로비바리 등 국제영화제에 여러번 초청됐다. 크리스치나 딕 감독. 2일 개봉.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