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 미 공관 진입 탈북자 미국 망명 거부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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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 진입한 40대 북한 남자에 대해 미국측이 자국으로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러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가 2일 밝혔다.

그는 “미측이 한국에 북한인의 인도를 타진했으나 한국도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제의 북한인은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일하던 노동자로 계약기간이 만료돼 북한으로 돌아가야 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망명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은 현재 이 북한인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넘기는 방안과 러시아측에 인도하는 방안 등에 대해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미국이 북한인을 러시아에 인도할 경우, 러시아는 북한과 맺은 협정에 따라 그를 본국으로 송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이 러시아, 중국 등 한반도 주변의 자국 공관으로 탈북자들이 대거 몰려 드는 사태를 우려해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해주 지역에는 현재 약 2000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의 계약기간이 완료되는 시점이라 앞으로 이번과 유사한 탈출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디보스토크 미국 총영사관 대변인은 “북한 사람이 여전히 영사관 내에 머물고 있다”며 “그러나 미국이 그의 망명 요청을 거부했는지, 그가 정치적 망명 신청을 했는지 논평할 수 없다”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총영사관은 “미국측으로 부터 북한인 신병 처리와 관련한 협조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문제의 북한인은 지난달 28일 오전 소방용 사다리를 이용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미국 총영사관 옆 건물 지붕으로 올라간 뒤 담장을 넘어 총영사관 건물로 진입한 뒤 망명을 요청했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서명, 발효시킨 북한 인권법은 탈북자의 미국 망명을 허용하고 있으나 이를 위한 실무 세칙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한 미국 관계자는“북한 인권법이 제대로 실행되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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