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사회의 관절염 막으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다음과 같은 이익 단체들은 왜 생겨나지 않을까. 백손련(전국백화점손님연맹), 지승련(전국지하철승객연합), 대근협(대한근로소득자협회), 고쇠싸먹사(고급 쇠고기를 싸게 먹고 싶은 사람들), 전중련(전국중산층연대). 비정부기구(NGO)들은 생겨도 이같은 이익 단체들이 여간해 생겨나지 않는 이유를 경제학자들은 일찌감치 설명해 놓았다.

참여하는 개개인이 들이는 비용(시간이든 돈이든 지식이든)에 비해 개개인이 얻는 이익이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맹렬 운동가가 나서준다면 무임승차를 할 사람은 많아도 자신이 직접 나서서 기회비용을 기꺼이 치를 사람은 적다는 이야기다.

요즘엔 인터넷으로 쉽게 모이고 쉽게 의견을 낼 길이 열려 있어 사회 행태가 크게 달라졌지만 그래도 열성 이익단체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반면 개개인이 들이는 비용에 비해 얻는 이익이 큰 경우는 매우 강력한 이익집단이 된다. 흔히 다수의 소비자보다 소수의 생산자, 다수의 이용자보다 소수의 공급자 집단이 더 활발하게 이익단체를 결성하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다.

오는 7월부터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을 금지시키는 데 성공한 지역 상인들의 경우를 보자. 백화점 셔틀버스 때문에 못살겠다고 거칠게 항의하는 지역 상인들의 압력에 박광태(민주.광주 북갑).김문수(한나라.부천 소사)의원 등 국회의원 54명은 지난해 10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자가용 셔틀버스를 운행할 수 있는 대상에서 백화점 등 유통업체를 삭제)을 발의했고 이 발의안은 12월에 국회 상임위.본회의를 통과했다.

자가용 셔틀버스를 운행할 수 있는 업종을 정부가 일일이 정한다는 것에 대해 "아니, 아직도 이런 규제가□" 라고 한 국회의원도 없었고, 소비자의 편익과 지역 상인들의 이익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따져본 국회의원도 없었다.

만일 전국백화점손님연맹이 목소리를 크게 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지역 상인들 수보다 백화점 손님들 수가 훨씬 많다는 사실에 국회의원들은 크게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대로 지역 상인들은 뭉쳐도 백화점 손님들은 뭉치지 않는다. 그러니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 금지가 경제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몇몇 국회의원들은 공정위에 호통까지 쳐가며 법을 바꾼 것이다.

'다수의 이익' 이 아니라 '소수의 이익' 이 더 잘 반영되는 것은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좋은 쇠고기를 더 싼 값에 사 먹고 싶은 사람들은 뭉치지 않지만 한우를 기르는 농가들은 생우(生牛) 수입을 막으려 행동에 나선다.

근로소득세를 내는 봉급생활자들은 지역의보와 직장의보가 합쳐지면서 상대적으로 더 손해를 보고 있지만 '결사(結社)의 자유' 를 십분 활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업종별로 이미 협회나 연합회 등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익 단체들의 이같은 속성은 어느 단체나 다 같다. 훌륭한 정관을 내걸고 재정 상태도 든든한 전국 규모의 이익 단체든, 그때그때 생겼다가 없어지곤 하는 '○○○ 결사 저지 투쟁위원회' 든, 소수인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뛰지 다수인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이익 단체들의 그같은 속성을 비난할 수도 없다. 만들 때부터 그러자고 만든 단체들임에랴. 문제는 나라.사회.정치가 그런 이익 단체들에 끌려다니다가는 박수를 받기는커녕 전체를 들어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도 아닌 영합주의의 종말이 그런 것이고, 이를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은 '조직의 관절염' 이라면서 "이익 단체에 휘둘리는 국가는 망한다" 고 했다.

이제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온갖 이익 단체들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벌써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 정치참여를 선언하고 나와 파문을 일으켰다.

또 1986년께부터 아이디어가 나왔던 새만금사업은 경제성이 없다 하여 덮이는가 했다가 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야당 당수의 영수회담 후 다시 살아났던 전력(前歷)이 있다. 그러니 DJ 정부는 애초부터 새만금사업을 계속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든 야든 내년 선거를 앞두고 지금부터 이익.지역 단체들과 적절한 거리를 두기 바란다. 정권을 잡은 뒤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김수길 경제담당 에디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