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읽기] 흐뭇한 공감의 시간 '순간포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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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제목만 얼핏 들으면 경악을 금치 못할 엽기적 사건이 줄줄이 나옴직한데 실제 화면에는 경이롭고 흐뭇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프로그램이 있다. SBS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15분에 방송하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가 바로 그것이다.

단 3주 만에 없어지는 프로도 있는 판에 만 3년을 꾸준히 이어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 프로가 자극적인 '몬도가네' 를 표방했다면 지금까지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유별난 삶을 사는 우리네 이웃뿐 아니라 연민을 깨우는 동물들의 이야기로 마음을 흔든다.

지난해의 대표 선수가 '누렁이' 라면 올해는 '솔이' 가 그 중심에 있다. 솔이는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된 잡종견이다. 강원도 횡성에 사는 여든 살의 주인 할머니는 개장수에게 강아지를 팔았는데 무려 2년이 지난 후 그 개가 다시 할머니집으로 돌아온 게 첫 번째 '어메이징 스토리' 다.

안타깝게도 다리 하나를 더 못 쓰게 된 모습으로 솔이는 나타났다. 방송이 나간 후 서울의 한 수의사가 자신이 한번 수술해 보겠다고 나섰고 기적처럼 솔이는 다시 네 발로 뛰어다니게 된 것이다.

가수 양희은씨가 부른 '백구' 라는 노래는 백구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그를 뒷동산에 묻기까지의 '장구한 이야기' 를 담고 있다.

거의 단편소설 요약분에 해당하는 그 길고 긴 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외워 부르는 나를 그녀는 신기한 눈으로 보았다. 그때 나는 말했다. "그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어렸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이야기에는 보석 같은 사랑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

'순간포착…' 은 철저하게 시청자의 제보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다. 시청자와 함께 만드는 프로그램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미국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았다는 시청자의 소감에서 또 하나의 따뜻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장수에게 팔려가는 장면에서 직접 당사자(솔이)를 재연시켜 촬영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솔이를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에 빠지게 했을 거라는 우려였다. 그 넓고 깊게 열린 마음에서 희망을 읽는다.

이야기를 잃어버린 세대는 불행하다. 늘 모니터 앞에 죽치고 앉아 누가 더 많이, 더 빨리 죽이느냐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비타민 같은 이 프로그램을 넌즈시 권하고 싶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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