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인터넷 세상 만들기 위한 필요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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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20면

"인터넷 倫理大國"이라고 씌인 이 서각은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인 윤헌효 선생의 작품이다. 인터넷윤리실천협의회가 2009년 11월 올바른 인터넷문화 정착을 기원하는 뜻에서 인터넷 윤리 관련 총괄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에 기증했다. 사진=신인섭 기자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업체인 구글이 결국 중국 사이트를 폐쇄했다. 중국 정부의 검열에 반발해 연초부터 갈등을 빚어오다 맞은 파국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구글은 중국이 정치·경제적으로 좀 더 개방된 사회가 될 수 있기를 희망했는지 모르지만, 4년간의 활동을 통해 중국이 정치적으로 개방된 사회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인터넷 금지어

인터넷은 안방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 그 속도는 빛의 속도에 견줄 만하다. ‘닫힌 국가’에 미치는 파괴력은 핵폭탄에 비교할 만큼 크다. 그래서 정보를 통제하는 나라에서는 인터넷이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민감한 정보들은 국가 차원에서 철저히 관리하는 이유 중 하나다.

체제 안전 외에 다른 이유로 통제하는 나라도 많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성(性)이나 비속어 등과 관련된 유해 정보·언어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적지 않은 나라에서 인터넷 금지어 리스트를 운용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글을 올리거나 검색 등을 할 때 차단시키는 용어들이다.

금지어는 ‘쓰지 못하게 타이르는 말’이란 뜻으로 학계에서 쓰는 금칙어와도 유사한 단어다. ‘인터넷 통신에서 품위 있는 언어 사용, 청소년 보호, 사회 질서 유지 등의 목적에서 쓰기 또는 찾기를 제한한 언어 표현’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인터넷 금지어는 인터넷 통신이 보편화되면서 나타난 21세기의 새로운 ‘금기 문화’라 부를 수 있는 흥미로운 언어현상이다.

모든 사회적 현상이 그렇듯 인터넷 금지어도 사회적인 배경과 이슈를 갖고 태어났다. 1990년대 중반 청소년들의 인터넷 사용이 급증하면서 무분별한 댓글로 인해 명예훼손 소송과 유해 정보가 크게 증가했다. 이를 자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여러 포털사이트에서 ‘금칙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포털 사업자들이 개별적으로 금지어를 설정해 웹상에서 네티즌의 쓰기를 제한하거나 찾기를 차단해왔다. 그러던 중 2003년 정보통신윤리위원회(2008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통합)에서 700여 개의 금지어를 선정해 인터넷 사이트에 적용하도록 권고사항으로 지정했다.

금지어는 누리꾼에게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는 판단 때문에 정부기관 및 인터넷 사업자들은 ‘성인인증 키워드’ 또는 ‘유해 키워드’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네이버·다음과 같은 포털에서는 누리꾼이 해당 표현을 검색할 때 성인 인증을 받도록 함으로써 미성년자의 관련 정보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금지어 목록은 한동안 공개되지 않았는데 2004년 ‘함께하는 시민행동’이란 단체에서 공공기관 정보공개를 청구함으로써 전체 목록이 확인됐다. 분석 결과 금지어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다. ▶성기 또는 성 행위 관련 표현 ▶비속어 및 인격 비하 표현 ▶사회적 문제 행위 표현 ▶경제 및 인터넷 문화 관련 표현(21면 표 참조)이 그것이다.

포털 사이트들은 이를 참고해 자율적으로 선정한 다수의 금지어를 쓰기 및 찾기 과정에서 적용해 걸러낸다. 그러나 포털마다 어떤 표현을 금지어로 정해두었는지는 ‘영업 비밀’이란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금지는 반발을 부른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게 막는 벽을 뚫기 위해 각종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원래의 단어 모습에서 한두 개의 모음이나 자음을 바꿔 문맥상 누가 봐도 의미를 알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 적는 방법이 하나 있다. 또 단어 가운데 한 곳에 일부러 띄어쓰기를 하거나 영문자·숫자·부호를 한두 개 끼워넣기도 한다. 금지어를 비유적 표현으로 바꿔 적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문제는 네티즌의 이런 우회 전략이 ‘국어 파괴’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미운 모양으로 변하고 심지어 사전에도 없는 단어가 의미를 얻어 널리 통용되기도 한다. ‘뷁(혹은 쀍)’의 경우가 그렇다. 이 말은 2003년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포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표현하거나 화가 났을 때 의성어로 쓰이면서 욕설을 대체하는 효과를 낸다.

인터넷 금지어는 인터넷 검열의 수단이자 산물이다. 그래서 언론 자유 신장을 위해 설립된 국제 기자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는 인터넷 금지어와 같은 ‘규제’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RSF는 이달 11일 발표한 인터넷 검열에 관한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을 ‘감시 대상국’으로 분류했다. ‘감시 대상국’은 인터넷 검열이 아주 심한 ‘인터넷의 적(敵)’보다는 덜하지만 이 국가군에 속하게 될 위험이 있는 나라를 가리킨다. RSF는 한국을 감시 대상국으로 분류한 이유로 ‘엄격한 법규가 웹 사용자들의 익명성을 위협하고 자기검열을 부추기는 등 지나치게 많은 세부 규제를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 보면 인터넷에서 필터링이 필요한 영역들이 분명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통제할 것인가"라기보다 "통제 범위를 누가 어떻게 결정하느냐"하는 점이다. 원래 인터넷이 정보유통에 있어 중간매개자의 영향력을 최소화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초기 설계자들은 방송시스템이나 초기 전화교환시스템과는 달리 편집자나 교환원과 같은 중간 통제자가 없는 ‘앤드 투 앤드(end to end)’방식으로 인터넷을 설계했다. 누구나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와 웹과 같은 어플리케이션만 있으면 매개자의 개입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자유롭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 같은 개방적·민주적 기술 설계는 지배를 통한 통치 대신 이용자·기업·정부가 동일한 위치에서 자율적 관리원칙을 만들어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율적 관리가 정착되면 근거없는 통제의 명분은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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