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이후…] 下. 변신하는 약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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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약국지도가 바뀌고 있다. 병원을 중심으로 대형 약국들이 몰려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가 하면, 자본력 있는 대형 약국들이 등장하고, 소형약국들은 체인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약국들이 외형적으로 비대해지는 것과 달리 의약분업의 기본취지인 환자를 위한 복약지도나 약력관리는 여전히 소홀한 것도 사실이다.

◇ 바뀌는 약국지도=의약분업 후 약국의 가장 큰 변화는 대형화.조직화된 조제전문 약국의 등장이다. 종래의 병원 약국실을 옮겨 놓은 듯한 인테리어를 갖추고 4~5명의 약사가 하루 2백~4백여건의 처방전을 처리한다.

전국에서 32개의 조제 전문 프랜차이즈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위드팜주식회사의 월 의약품 매출규모는 30억원 정도에 이른다. 현재 이렇게 프랜차이즈 형태로 약국을 경영하는 회사는 20여개사나 된다. 3~4개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의약분업 이후 설립됐다.

위드팜의 한 관계자는 "병원 앞에 있는 조제 전문 약국의 70%가 프랜차이즈에 소속된 약국" 이라며 "약국 한 곳의 개설비가 5억~6억원이 들어갈 정도로 규모가 대형화하고, 기업화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고 말했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앞에 있는 D약국. 한쪽 코너에 영양사가 운영하는 비타민하우스를 개설, 건강식품이나 특수 영양식품을 팔고 있다. 일반약품의 매출이 크게 줄면서 '숍 인 숍' 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약국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타민하우스의 회원 약국은 전국적으로 1백여개. 이와 유사한 형태의 내추럴하우스도 개점을 앞두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변신 못하는 약국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약국 1번지' 로 인기를 누리던 종로.영등포의 대형 약국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종로구의 경우 분업 전 40여개에 달하던 약국은 현재 34개로 줄었고, 비약사들이 창구에서 흰 가운을 입고 판매에 나섰던 종래의 모습도 사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L사무관은 "의약분업 후 1만8천여개의 약국 중 3천여개가 병원 근처로 이전하고, 2천여개가 신설됐으며, 동네약국 1천여개가 문을 닫은 것으로 추산된다" 고 말했다.

◇ 치열한 환자유치 경쟁=서울중앙병원에서 가까운 대로변에는 많을 경우 10여대의 환자 호객용 차량이 늘어서 있다. 병원에서 하루 3천여 장이나 쏟아져 나오는 처방전을 유치하기 위해 주변약국들이 차량을 운행하는 것. 환자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주거나 환자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잡지나 커피 제공과 같은 서비스를 하는 것은 옛날 얘기다.

문제는 경쟁의 도를 지나친 병원과 약국의 끊임없는 담합 시비다. 당뇨병환자인 P모(67.서울 종로구)씨는 "병원 처방전을 들고 동네 약국을 돌아다녔지만 원하는 약이 없어 결국 병원 앞에 있는 특정약국을 이용했다" 고 불만을 털어놨다. 같은 성분의 의약품이 무수히 많고 대체조제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약의 선택권을 갖고 있는 의사가 약국의 '목' 을 쥐기는 너무 쉽다는 것이다.

S약국 C씨(서울 마포구)는 "병원들이 자주 약을 바꾸면서 약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으면 그 약국은 생존할 수 없다" 며 "현재의 의약분업 구조 속에서 '약은 약사에게' 라는 말은 구호에 불과하다" 고 말했다. 지금까지 적발돼 행정조치를 받은 약국은 29건에 불과하다.

◇ 환자 위한 서비스는 외면=병원 앞의 이른바 문전약국은 편리한 대신 환자가 병원을 옮길 때마다 약국이 바뀌어 약력(藥歷)관리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약력이란 환자가 먹는 약의 모든 기록을 말하는 것. 약사는 환자가 다니는 병원의 처방약을 면밀히 분석, 처방약 상호간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대한약사회의 신문인 약사공론 정동명 부국장은 "질환이 많은 노인은 여러 병원을 다니기 때문에 약력관리가 더욱 필요하다" 며 "약력관리에 대한 약사들의 인식부족도 있지만 환자들이 자주 약국을 바꾸기 때문에 사실상 약력관리는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고 말했다.

복약지도 역시 구호에 그치고 있다. 문전약국의 경우 오전 11시부터 환자가 몰려 복용방법을 알려주는 것만도 벅찬 것이 현실. 의료개혁시민연대가 조사한 자료(표)에서도 환자의 24%가 복약지도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나마 95%는 복용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녹색시민소비자연대 건강안전국 조윤미 국장은 "문전약국이 강화될수록 처방전이 분산되지 않아 환자의 약력관리와 복약지도가 소홀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며 "단골약국 이용을 늘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고종관 기자

*** 인하대병원 사례

인하대병원 앞에는 다른 대학병원 앞처럼 즐비하게 늘어선 문전약국을 보기가 어렵다.병원측이 인천 전역에 흩어져 있는 약국들과 협력체제를 구축,환자들이 집에서 가까운 약국을 이용하도록 유도하기 때문.

이 병원 약제팀 윤혜설차장은 “협력을 원하는 1백여 약국에 의약품정보를 이메일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내주고 복약지도를 위한 교육을 해주는 등 의약분업에 걸맞은 협력망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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