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마음의 '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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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교육 주체인 교사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리고 전폭적인 지원으로 우리 교육의 희망을 찾아 나섭시다. "

지난 13일 서울 남산공원에서는 교사.학부모.학생 2천여명이 함께 걸으며 사제지간의 정을 확인하는 것으로 교육의 희망을 찾아나섰다.

"나는 촌지를 무지 많이 받는 교사다. 그리고 촌지가 너무너무 좋다…. 가뜩이나 뒤숭숭한 학교생활 속에서 장마 끝에 나온 햇살 한줌처럼 행복해지는 때는 아이들에게선 존경을, 학부모들에게선 신뢰를 얻고 있다고 느낄 때다. "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을 많이 받는다는 한 초등학교 교사가 일간지에 기고한 글 한부분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교사들은 신뢰와 지원도 못받고, 교직에 대한 자부심도 못 느끼고 있다. 한국교총에서 스승의 날을 앞두고 교사 2천6백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원 예우 및 교권 실태 설문조사' 에 따르면 69.3%가 교직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회의 스승 존경도와 예우에 대해선 71.3%가 낮다고 답했다. 10명 중 7명이 존경도 못받고 교직에 만족도 못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제자나 학부모, 사회로부터 축하받아야 마땅할 스승의 날에도 스승 스스로 학교문을 걸어 잠가야만 했을까.

서울의 초등학교 40%가 오늘 휴교했다. 내세우는 이유는 '옛 스승 찾아뵙기' '스승의 은혜 깨닫기' 등이지만 속사정은 촌지 수수에 대한 물의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다.

촌지는 글자 그대로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다. 주는 사람의 정성만 담겨 있지 대가나 그 보상을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부터 인정 나눔의 좋은 풍속으로 내려오던 촌지가 근대화.산업화 이후 보상을 바라고 은밀히 건네는 뇌물의 미화된 용어로 바뀐 것이다.

다른 학생에 앞서 내 자녀를 좀더 잘 봐달라며, 학생들을 볼모로 해 촌지를 주고받는 학부모와 교사도 일부 있다. 그런다고 스승의 날 휴교하고 또 가정 환경을 살펴 잘 지도하기 위한 가정방문까지 기피하도록 해서야 어떻게 스승의 권위가 설 수 있다는 말인가.

14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일선 학교 교단에 '일일 교사' 로 섰다. 옳은 것만 잘 가르쳐 훌륭하게 제자들을 키워내겠다는 교단의 숙연함을 몸소 느꼈을 것이다. 평생 그렇게 교단을 지켜내려는 우리 선생님들. 그 스승의 마음을 더 이상 흔들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촌지로 성원할 일이다.

이경철 문화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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