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과학자 겸 정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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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인슈타인은 "정치가 물리학보다 힘들다" 고 논평한 적이 있다. 물리학은 자연의 질서를 발견하는 인간의 활동이지만, 정치는 근본적으로 갈등관계에 있고 무질서한 집단을 아우르고 통합해서 이 갈등을 사회발전을 추진하는 에너지로 바꾸는 복잡한 기예(技藝)이기 때문이다.

과학과 정치의 거리는 '과학자 겸 정치인' 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보여진다. 과학사를 통틀어 과학과 정치의 두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한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그 중 한명이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다. 제퍼슨은 지리학과 측량에 관심이 많아 미시시피 탐험대가 쓸 장비를 직접 설계하고 대원을 훈련시키기도 했다. 그는 부통령을 역임하던 시절에도 고생물학에 대한 논문을 써서 이를 학회에서 발표할 정도로, 정치적 경력의 정점에서도 과학연구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다.

또 다른 인물은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프랭클린은 축전기의 작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서 당시 유럽 과학자들에게 미국에도 뛰어난 과학이 있음을 인식시켜주었고, 광범위한 전기현상을 설명하는 '단일유체이론' 을 주창했다.

그렇지만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의 전기 이론에 기초한 피뢰침의 발명이었다. 피뢰침은 자연의 무자비한 힘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꾼 뉴턴 이후 최고의 과학적 개가로 칭송됐다.

프랭클린은 해양현상에도 관심이 많았고, 비.지진.흑점.별똥별도 연구했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제퍼슨과 함께 미국 독립선언문을 작성해서 미국 독립을 선도했으며, 독립 이후에는 외교관으로 프랑스에 머물면서 신생국의 복잡한 외교문제를 해결하는 데 뛰어난 수완을 보였다.

1927년 미국의 젊은 물리학자 칼 콤프턴은 프랭클린의 업적에 대해 논평하면서, 이제 과학이 너무 전문화.세분화돼 프랭클린처럼 다방면에 걸쳐 과학과 정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얘기를 한 콤프턴 자신이 새로운 유형의 과학자 겸 정치인이 됐다는 사실이다.

콤프턴은 기초과학을 위한 기업체의 기부금을 모아 국가연구기금의 형성을 추진했고, 이것이 실패하자 바니바 부시, 제임스 코난트 등의 과학자와 함께 연방정부의 재원으로 과학연구를 지원하는 혁신적인 과학정책의 개념을 제시했다.

'정상을 더 높게' 라는 엘리트주의 철학과, 간(間)학문 연구의 지원, 순수과학에 대한 대대적인 정부의 지원 등 전후 미국 과학의 골격을 이룬 정책 기초가 이런 새로운 '과학자 겸 정치인' 들에 의해 고안됐다.

이러한 정책적 기초는 이들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기업가.군인.정치인과 활발하게 교류했고 그 과정에서 현대과학과 기술, 과학과 사회, 과학과 경제의 복잡한 관련을 새롭게 이해하면서 만들어졌다.

과학자의 연구는 재원을 필요로 하고 그 재원의 대부분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 그렇지만 연구에 대한 지원을 외치는 과학자들은 정부의 과학정책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듯하다.

지금 과학기술 예산이 한국 정부 일반회계 예산의 4%가 넘었지만 정치인과 관료는 과학연구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면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는 사회의 리소스를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정책의 기초를 이해하지 못하는 식으로 정책 - 연구가 양분돼 있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과학의 역할이 커질수록 사회 속에서의 과학의 위상과 과학의 사회.기술.경제적 영향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런 이해에 기초해서 과학발전과 이를 도모하는 경제적.문화적 지원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는 새로운 유형의 '과학자 겸 정치인' 의 목소리와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과학교육과 과학문화는 이러한 소양을 갖춘 '과학자 겸 정치인' 을 만들 수 있는가? 과학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학자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洪性旭 <토론토대 교수.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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