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채권 때아닌 "사자" 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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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한이 과거에 발행한 채권이 앞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이 나와 흥미를 끌고 있다.

북한은 1970년대 초반 조선무역은행을 통해 유럽은행들로부터 플랜트 수입용 외자를 유치했다가 지불능력이 없어 76년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채권은 계속 거래돼 왔다.

금융정보를 전문으로 다루는 다우존스 통신은 지난 8일 북한이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가입해 채무 구조조정을 할 경우 북한 채권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북한이 국제 금융기구에 가입한 후 1년 내 채무 조정만 하면 채권가격이 12센트에서 30~35센트 수준까지 오를 것" 이라는 런던 소재 애버딘 자산관리의 줄리안 애덤스 신흥(新興)시장 담당관의 전망을 인용, 보도했다.

북한은 현재 원금 6억달러와 이자 12억달러를 포함해 모두 18억달러의 대외 채무를 지니고 있다.

애덤스 담당관의 이같은 전망은 베트남의 전례를 감안한 것이다. 92년 15센트에 거래되던 베트남 채권이 IMF 등 국제금융의 지원과 채무 구조조정을 거치자 5년 뒤 1달러8센트로 급등했다는 것이다.

이 통신은 북한의 경제 전망이 베트남에 비해 불투명하지만 '한반도 통일카드' 때문에 매력적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신흥시장 전문 투자사인 엑조틱의 피터 바트렛 부장은 "채권 투자가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통일" 이라며 "통일이 되면 남한이 채무를 해결해 준다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고 말했다.

북한의 부채 규모가 국제 금융시장에선 상대적으로 작다고 평가받는 것도 높은 수익률의 근거가 되고 있다. 실제로 북한 채권은 지난해 4월 10센트 미만이었으나 6월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데 이어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가 완화되자 10월에는 20센트를 웃돌아 투자자들에게 두 배 이상의 수익을 올려줬다.

그러나 북한 채권의 수익성을 둘러싸고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수출입은행 박유환(朴有煥)과장은 "이미 부실 처리된 북한 채권이 실제로 얼마에 거래되는지 알 수 없을 뿐더러 북한이 IMF 프로그램을 이행하는 과정을 거쳐 금융 지원을 받을지도 의문" 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도 "92, 93년 남북 화해 분위기 때 북한 채권이 60센트로 급등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던 만큼 이를 예측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베트남의 경우 지난해 3월 채권 가격이 54센트인 점을 감안할 때 3년 전에 1달러8센트였다는 애덤스 담당관의 말도 믿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적인 우량 채권도 70% 정도 급등하는 경우가 드문데 베트남 채권이 72% 급등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고 주장했다.

어쨌든 북한이 국제 금융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점점 커짐에 따라 북한 채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전망이다.

고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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