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이야기] '속보경쟁의 꽃' 특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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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조간인 중앙 일간지의 오후 7시는 희비가 엇갈리는 시간이다. 이때쯤이면 경쟁사들의 다음 날짜 초판(가판용) 신문이 나와 내용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파급 효과가 큰 기사를 자사 신문에 보도하지 못하면 낙종(落種)의 불명예를 안는다. 자존심이 상한다고 빠뜨린 기사를 무시한 채 넘어갈 수도 없다. 독자는 알 권리가 있다.

담당 기자는 부랴부랴 낙종한 기사의 사실 여부를 확인해 다음 판(版)에 반영한다. 그래서 특종(特種)이다 싶으면 초판엔 안 쓰고 가정 배달 판에 싣는 사례가 많다.

낙종이 잦은 신문은 결국 신뢰를 잃는다. 반대로 크고 작은 특종이 많은 신문은 독자의 신뢰가 쌓이고 그만큼 잘 팔린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정보화 혁명 속에서도 신뢰받는 신문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특종은 영어로 스쿠프(scoop)다. 사전적 의미는 신문.잡지.TV 등 저널리즘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행위를 경쟁사보다 앞서 독점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진정한 의미의 특종은 정권 등 뉴스원(源)이 숨기거나 왜곡한 사실의 정확한 모습을 폭로하는 기사를 말한다. 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실에서 문제점을 찾아 재조명하는 것도 특종에 속한다. 뉴스원이 곧 발표할 내용을 앞서 입수해 단순 보도에 그치는 것은 특종으로서 함량이 부족하다.

따라서 특종을 하려면 파헤치기 힘든 주요 사건의 진상을 밝혀 경쟁사보다 먼저 보도해야 한다. 추적.심층.분석.후속 보도가 따라야 하고, 제기한 문제의 대안까지 제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가령 국내외 주요 특종을 보자. 1987년 1월 15일자 중앙일보의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보도는 결국 서슬퍼렇던 군사정권을 허물고 6.29 민주화 선언을 이끌어내는 도화선이 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72년 6월 17일 비밀공작반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워싱턴 DC 소재 워터게이트빌딩의 민주당 본부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을 파고들어 대통령 사임을 불렀다.

백과사전에 오를 만큼 유명한 특종은 영국의 유력 일간지 타임스의 특파원이었던 H S 브로위츠가 1878년 베를린에서 열렸던 유럽 국제회의의 비밀을 독점 보도한 기사다. 당시 회의에서 영국.독일 등 7개국 대표들은 러시아의 발칸반도 남하 진출을 막은 베를린조약을 체결했다.

진실을 추구하는 특종은 위대하다. 특종은 왜곡된 진실을 밝혀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고,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때론 목숨을 걸고 취재하는 기자들의 값진 선물이다.

오늘날 각 언론사의 취재망이 정비돼 특종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더구나 전자매체의 발달로 속보성이 생명인 특종 경쟁에서 신문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특종은 여전히 신문 경쟁의 꽃이다.

이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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