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대체 배경] 北핵· 미사일 동시 해결 부시 새틀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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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정부가 북한에 건설 중인 경수로 2기를 화력발전소로 대체키로 방침을 정하고 한.일과 협의에 나서기로 한 것은 클린턴 행정부 때의 대북정책을 승계하기보다는 새로운 대북정책 '판짜기' 의 첫 신호탄으로 보여 주목된다.

◇ '화전 대체 배경' = 부시 행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북한이 '예측 불가능한 국가' 라는 기본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네바 합의에 따른 경수로 제공은 북한이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고도의 재처리 시설' 을 갖추기 어렵다는 클린턴 정부의 판단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상당한 양을 추출할 수 있다' 는 미국 전문가들의 견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군사 과학기술을 갖고 있는 데다, 1993년 '핵확산 금지조약(NPT)' 의 탈퇴에서 보여줬듯이 향후 제네바 합의에 따른 사찰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전언이다.

이와 함께 경수로의 안전성 문제도 한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다른 당국자는 "경수로 원자로 사업에 입찰한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이 99년부터 '북한의 기술력으론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 며 미국 정부에 보증을 요구할 정도였다" 고 말했다.

◇ '새로운 협상 틀' = 부시 정부는 클린턴 정부의 북한 핵문제 처리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보완하면서 미사일 문제도 함께 해결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핵문제를 '처리한' 제네바 합의와 미사일 협상을 주로 다룬 '2000년 북.미 공동선언' 을 종합하는 '새로운 협상틀' 을 입안하겠다는 게 부시 정부의 기본 전략인 것 같다고 한 외교소식통은 전했다. 이에 따라 향후 북.미 협상에선 '검증(verification)' 과 '감시(monitoring)' 가 기본전제가 될 전망이다.

미측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북측은 일단 강력 반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미측이 조속한 화전 건설을 보장하면서,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 등을 통해 다른 '보상' 을 해주겠다고 할 경우 북한이 실리적 노선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시작이다" = 부시 정부는 화전 대체를 추진하되, 한국.일본 등과 협의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건설비용을 대고 있는 한.일을 비롯, 유럽연합(EU)의 지지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미측도 알고 있다는 게 외교소식통의 전언이다.

경수로 건설의 타당성을 설명해 온 우리 정부는 일단 미측을 설득하되 불가능할 경우 북.미 협상을 권유키로 내부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이 문제로 북.미 협상이 재개되면 어떤 '돌파구' 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화전 대체에 대한 미국의 방침은 섰으나 이것이 가시화하려면 오랜 시일이 걸릴 것" 이라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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