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정현종 '그 굽은 곡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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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내 그지없이 사랑하느니

풀 뜯고 있는 소들

풀 뜯고 있는 말들의

그 굽은 곡선!

생명의 모습

그 곡선

평화의 노다지

그 곡선

왜 그렇게 못 견디게

좋을까

그 굽은 곡선!

- 정현종(1939~ )의 '그 굽은 곡선'

내 습작 시절, 그러니까 이십 몇년 전에 정현종 시인은 황홀한 언어의 축제를 주도하는 사제 같았다. 그의 시는 문학도들이 상상력을 공부할 수 있는 훌륭한 책상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시인은 참으로 단순한 어린이가 되었다.

절대적인 천진무구의 세계란 이런 것일까? 시인은 눈으로 관찰한 것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직관의 번뜩이는 힘만이 시를 지배한다. 시의 어조마저 어린이의 그것이고자 한다. 평이한 구문 속에 슬쩍 끼어들어 있는 '평화의 노다지!' 그렇다. 평화는 'No touch' , 바로 그것이다.

안도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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