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읽기] 자녀와 TV 보며 대화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텔레비전 우측 상단에 12, 15, 19 등의 숫자를 볼 때마다 '어린이는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라고 자막을 띄우는 제작진의 눈물겨운(?) 배려가 떠오른다.

내가 어린이일 때 제일 보고 싶었던 영화가 '미성년자 절대 관람불가' 였던 걸 생각하면 "도대체 저 자막은 정말로 어린이를 위해서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오락 프로그램 제작진치고 "당신은 자식도 안 키우느냐" 는 시청자의 항의 한번 안 받아본 사람 없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왜 이 땅의 교육이 이 정도밖에 안 될까' 하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어린이 시청자만을 위해 방송사가 따로 어린이 보호벨트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신네 방송사부터 만드시오. 그러면 우리도 고려해 보리다' 정도일 것이다. '뽀뽀뽀' 를 오랫동안 제작한 선배 PD가 털어놓은 고민이 기억난다.

'어린이 프로에서 바람직한 (고전적인)어린이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현실의 영악한 어린이를 보여줄 것인가' 가 그 내막이었다. 나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보든 안 보든 욕먹지 않고 칭찬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하십시오" 지금 생각하면 남의 일이라고 무책임하게 쏟아낸 말인 듯하다.

인터넷 게임에 깊이 빠져 있고 ' '세 친구' 처럼 독한 내용에 이미 길들여 있는 어린이 시청자에게 예전의 '호랑이 선생님' 같은 프로가 먹힐 리 없다.

TV를 가운데 두고 제작진과 학부모가 적군이 될 이유가 없다. 자녀가 걱정된다면 TV를 '함께' 시청하면서 꾸준히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 "저건 아름답지 않지" "저건 억지로 웃기려고 꾸민 이야기지" 등등. 뉴스에서 원조교제라는 말이 나왔을 때 그게 뭐냐고 묻는 어린이에게 "별 걸 다 알려고 한다" 라며 야단칠 일이 아니다.

어린이의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쉽진 않다)그것이 왜 안 좋은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실 어린이는 대부분 짐작하고 있다. 다만 모르는 체 할 뿐이다. 아무리 '애들은 가라' '애들은 자라' 고 을러도 소용없는 일이다.

차라리 세상엔 이렇게 정돈된 풍경도 있고 매우 엉클어진 혼돈의 모습도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게 좋다.

'하지 말라는 건 다 재미있다' 는 전유성씨의 책을 읽으며 우리는 재미에 대해 너무 강박관념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 있으면 '무슨 죄를 짓는 게 아닌가' 하며 두려워한 일면이 있다.

아이들에게까지 그것을 대물림하지 말 일이다. 재미 있으면 좋고 의미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주철환(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