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칭찬에도 뿌리와 가지 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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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서울 상계동의 박미향씨가 아이들에게 ‘똘똘이’ ‘수학박사’ ‘복덩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고 숙제와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애칭을 사용하는 것도 칭찬의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변선구 기자

칭찬할 것이냐,혼을 낼 것이냐. 아이가 못한다고, 부모가 짜증이 난다고 혼을 내자니 아이의 기가 죽을 것 같다. 그렇다고 마냥 칭찬만 해주면 아이가 기고만장해질 것 같다. 딱 부러지는 정답은 없다. 다만 칭찬에는 아이의 자신감을 길러주는 힘이 숨어 있다. 부모가 자신을 인정해준다는 만족감을 안겨줌으로써 꾸중이나 매로는 풀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는 것. 그런데 칭찬에도 꼭 알아둬야 할 기술이 있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칭찬기술을 알아본다.

*** 전문가가 권하는 '자녀칭찬 기술'

아이에 대한 칭찬은 날 잡아서 거창하게 하는 게 아니다. 일상
생활에서 자그마한 것을 잘 해내거나 사소하지만 나쁜 버릇을 고쳤을 때 즉시 해주는 칭찬이 큰 효과를 본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손석한 박사는 칭찬의 종류를 '뿌리 칭찬'과 '가지 칭찬'으로 나눈다. '뿌리 칭찬'이란 꼭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제행동을 고쳤을 때 하는 칭찬이다. 예를 들어 공부 하기 싫어 하는 아이가 매일 한시간씩 공부하도록 계획을 세우고 이를 지킬 경우 칭찬한다.부모나 아이 모두에게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이에 비해 '가지칭찬'은 고치기 쉬운 행동을 목표로 세우고 이를 고칠 경우 하는 칭찬이다. 쉬운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어려운 것을 고치도록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다. 최종 목표가 매일 한시간씩 공부하는 것이더라도 첫날 10분, 다음날은 20분, 그 다음날은 30분…, 이런 식으로 시간을 늘려가면서 칭찬하는 것이다.

평소 '가지 칭찬'을 많이 해주다 아이의 행동에 뚜렷한 변화가 보이면 '뿌리 칭찬'을 아끼지 않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부모가 서로 상의 없이 마구잡이로 해주는 칭찬은 아이에게 혼란을 안겨줄 수 있다. 부모의 의견이 서로 지나치게 다를 경우가 문제다. 이때 아이는 힘이 있고 자신에게 잘해주는 쪽을 따르게 된다. 손석한 박사는 "칭찬이나 야단 모두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일관성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칭찬을 말로만 때울 수는 없다. 칭찬받을만한 일을 하면 상도 줘야 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아이의 행동에 따라 단계적으로 상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부모의 기분에 따라 주면 아이가 부모의 기분에 맞춰 행동하려 할 뿐 진정한 개선 효과는 없다. 아이에게 주는 상으론 역시 선물이 주종을 이룬다. 특히 맞벌이 부부는 부모로서 부족한 부분을 선물로 상쇄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때도 장난감을 사주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장난감을 사준 뒤 아이와 함께 가지고 노는 것이 더 중요하다.

체벌은 엄격함이나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훈육 방식이다. 체벌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지만 부모와 자녀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또 아이를 때릴 때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더라도 문제 해결을 완력으로 하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분과 정유숙 교수는 "가능하면 야단은 적게 치는 것이 좋다. 아이들은 부모가 이유를 설명해줘도 혼났다는 것, 매를 맞았다는 것만 기억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쉽다"고 말했다.

불가피하게 야단을 칠 경우에도 피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형제나 친구와 비교하는 것이다. 정 교수는 "누구보다 잘해서, 또는 누구보다 못해서 칭찬이나 꾸지람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 이렇게 해 보세요

◆ 칭찬할 때

-그 자리에서 즉시 칭찬하자

-"참 잘했어요!"라고 말하자

-칭찬하는 이유를 말해주자

-상을 주자

-부모가 바라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자

-사랑과 칭찬의 신호를 만들어 몸으로 표현하자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야

-선물도 독이 될 수 있다

-부모가 일관성있게 칭찬해야

-스스로 한 일에 대해 더욱 많이 칭찬하자

-하지 말라고 한 일을 하지 않았을 때도 칭찬은 필수

◆ 야단치기 전에

-감정적으로 화를 내지 않기

-지나간 일을 끄집어내지 않기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만 야단치기

-형제자매를 비교하지 않기

-야단치는 목적은 분명하게

-아이의 인격을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기

-고쳐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기

-절대 때리지 않기

-시간을 정해놓고 야단치기

-아이의 생각을 들어보기

*도움말=손석한(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박사

*** 이런 게 바람직한 칭찬

받아쓰기에서 처음으로 100점을 받은 초등학교 1학년 은혜. 엄마와 매일 1시간씩 연습을 한 결과다. 이럴 때 부모는 어떻게 칭찬을 해줘야 할까.

"은혜가 100점을 받아서 엄마는 정말 기뻐. 참 잘했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결과에 관심을 가진 칭찬에 불과하다.

반면 이런 칭찬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은혜가 100점을 받았구나. 네가 지난 일주일 동안 엄마와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 이제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지."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 가치를 둔 칭찬을 들으면 아이는 자신의 노력을 거쳐 나온 결과가 칭찬을 받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의 동기를 북돋우는 격려인 셈이다.

손석한 박사는 "자녀에게 왜 칭찬을 받을 행동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과에 대해서만 칭찬할 경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부작용도 낳을 수 있으므로 과정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 아이를 바꾸는 한마디의 힘

▶주호(9)=방과후 친구들과 문방구.오락실 등을 기웃거리느라 늘 학원에 늦었다. 엄마는 어르고 달래고, 혼내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기다려 학원에 데려다주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엄마가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게 창피했던 주호는 다른 길로 샜고 학원도 빼먹었다.

아이와의 숨바꼭질에 지쳐가던 엄마는 "칭찬과 상을 주라"는 의사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주호가 시간에 맞춰 학원을 가면 "잘했다"고 꼭 말해주고 학교에 다녀온 뒤에는 간식을 챙겨주는 등 칭찬과 관심을 보이자 주호의 태도는 일주일만에 달라지기 시작했다.

▶태성(9)=엄마는 자신이 바라는 행동을 아이가 못할 때마다 야단을 쳤고, 태성이는 급기야 소아 우울증을 보이게 됐다. 주의가 산만하고 엄마나 선생님에게 자주 화를 내고 대들다 결국 병원을 찾았다.

의사의 권유로 칭찬요법이 도입됐다. 우선 아이에게 그날 그날 할 일을 구체적으로 일러준 뒤 이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 뒤에는 아낌없이 칭찬했다. 그러자 칭찬을 듣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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