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학 스포츠까지 심판 매수로 더럽혀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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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대학 축구팀 감독이 상습적으로 심판을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다 경찰에 붙잡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은 2008~2009년 열린 축구대회에서 심판 10명에게 2300여만원을 건넨 고려대 전 축구감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심판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고려대는 지난해 연세대와의 정기전을 비롯해 심판을 매수한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고 한다. 돈을 받은 한 심판은 경찰에 “안 줘도 될 반칙을 주고 퇴장도 시켰다”고 털어놨다. 정정당당해야 할 스포츠, 그것도 가장 순수해야 할 대학 스포츠에서 이런 추태가 벌어지다니 기막힌 노릇이다.

국내 스포츠계에서 심판 매수나 승부조작 논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천신일 대한레슬링협회장이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 심판들에게 금전을 살포했다는 법정 진술로 물의를 빚은 게 불과 두 달 전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도 축구나 핸드볼 등에서 한국이 심판 판정과 관련해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심판 판정에 대해 국제적 비난이 있었다. 그러나 실체가 확인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순수와 페어플레이를 생명으로 삼아야 할 대학 스포츠에서 오염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충격과 파장이 큰 만큼 엄중 처벌과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대학 스포츠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승리지상주의에 빠지면 설 자리를 잃고 만다. 공정한 경쟁을 피하고 심판 매수나 하는 건 학생 선수들의 값진 땀을 욕되게 하는 비교육적 행위다. 결코 축구감독 개인의 문제로만 덮고 넘겨선 안 된다. 자기 대학 감독이 심판에게 돈을 뿌리고 선수 학부모에게 거둔 팀 운영비 1억7000여만원을 횡령하도록 방치한 대학 측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협회 소속 심판이 10명이나 뇌물의 유혹에 넘어가고 심판 배정을 맡은 협회 위원이 부정에 가담할 정도로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축구협회의 허물도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대학과 협회는 부정행위 엄단과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게 그 허물을 씻는 길임을 유념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