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표류… 여야 우왕좌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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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장면 1=25일 오전 민주당 확대당직자회의.

김성순(金聖順.제3정책조정위원장)의원이 이상수(李相洙)총무에게 소리쳤다. "우리 위원회에서 모성(母性)보호법을 줄곧 준비해 왔는데 위원장인 나도 모르게 2년 연기를 발표할 수 있느냐. 도대체 누구와 토의한 거냐" 고 따졌다.

이미경(李美卿.제4정책조정위원장)의원도 "말이 안된다" 며 가세했다.

국회 법사위 간사로 이른바 '돈세탁방지법' 입안을 주도해 왔던 함승희(咸承熙)의원은 "금융감독위 직원의 검찰 파견은 반대하면서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연결계좌 추적권을 주자는 것은 모순" 이라며 전날 李총무가 아이디어를 낸 재(再)수정안을 비판했다.

이해찬(李海瓚)정책위의장이 "우리 당론만 지키면 이제 시작한 자민련.민국당과의 정책공조가 깨지는데 어떻게 하느냐" 며 분위기 전환을 유도했다.

▶장면 2=같은 시각 한나라당 총재단 회의.

"모성보호법을 유보해선 안되고 국고보조 등을 통해 이른 시일 안에 실시해야 한다" 는 정책위의 의견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전날까지 어정쩡했던 입장과 달랐다. 재계가 법안에 반대한다고 밝힌 뒤 한나라당은 입장표명에 조심스러워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2년 연기를 결정하자 이날부터 강행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장면 3=이날 낮 이상수.정창화(鄭昌和.한나라당)총무가 만났다. 돈세탁방지법의 재협상과 모성보호법의 국회처리 문제를 논의했으나 묘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국회 상임위에 넘기기로 했다. 그러나 환경노동위는 모성보호법을 놓고 여야 의원들간 공방만 벌였다.

정국 핵심 쟁점인 두 가지 법안이 이런 식으로 표류하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민주당 김중권(金重權)대표.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 등 여야 지도부의 법안 접근.관리의 문제점이 실감나게 드러났다" 고 지적했다. 여야 내부에서도 자체 비판의 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실무 당직자는 "당내 여론수렴 과정이 미흡했다" 며 "지도부가 법안 내용보다 자민련.민국당과의 3당 정책공조를 통한 국회 통과에만 신경쓰는 것 같다" 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재선 의원은 "우리 당의 입장에서 법안을 다루기보다 여론 눈치보기와 대여 공세를 우선하는 흔적이 드러난다" 고 말했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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