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해외 참전용사 방한 초청 규모 대폭 늘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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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켜달라는 조국의 부름에 응한 미국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 새겨진 묘비명이다. 이를 본 한국인치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고마움에 코끝이 찡해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산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신생 자유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연인원 178만9000명의 미국인이 낯설고 물선 땅 한국에 왔다. 그중 3만6940명이 전사하고, 9만2134명이 부상했다. 3737명이 실종됐고, 4439명이 포로가 됐다. 미국을 비롯, 영국·캐나다·터키·호주·필리핀·태국·네덜란드·콜롬비아·그리스·뉴질랜드·에티오피아·벨기에·프랑스·남아공·룩셈부르크 등 16개국이 유엔의 깃발 아래 참전했고, 인도·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이탈리아는 의료진과 병원선을 보냈다. 이들의 헌신과 노고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에게 우리는 큰 빚을 지고 있다.

올해로 6·25 전쟁 발발 60주년이다. 1950년 20세의 꽃다운 나이에 한국에 파병됐던 청년은 80세의 할아버지가 됐다. 그들이 목숨을 바쳐 구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례 없는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하고, 선진국의 문턱까지 왔다. 세계 13위의 경제대국,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재하는 국제사회의 당당한 주역이 됐다.

유엔 21개국 참전용사 194만 명 중 생존자는 53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중 소재가 파악된 사람은 약 10만 명이라고 한다. 정부는 6·25 60주년에 맞춰 이들 전원에게 대통령 명의로 감사 편지를 보내고, 당사자나 유가족 2400명을 올해 중 초청할 계획이다. 더 늘리고 싶어도 예산 사정 때문에 어렵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항공료의 절반과 체재비를 지원해주는 데도 64억원이 든다고 한다.

60주년이 갖는 각별한 의미를 생각한다면 초청 대상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 다른 예산을 줄여서라도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참전용사를 초청해 고마움을 표시하자.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한국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았음을 직접 확인케 하자. 75년부터 지금까지 약 2만5000명의 참전용사가 정부 초청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이들은 한결같이 눈부신 발전상에 놀라고 자신들이 청춘을 바쳐 싸운 데 대한 보람과 자긍심을 표시했다. 그들이 돌아가 전파하는 감동의 스토리야말로 우리에겐 망외(望外)의 소득이다. 한국을 홍보하는 최상의 자산인 셈이다.

한국은 받기만 하던 나라에서 베푸는 나라가 됐다. 나아가 고마워할 줄 알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G20 의장국으로서, 가급적 많은 해외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한다면 국가 브랜드와 국격(國格)을 높이는 효과도 클 것이다. 그들에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