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58년 개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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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8년 개띠해/오월 오일에 태어났다, 나는/…마을 어르신들/너는 좋은 날 태어났으니/잘 살 거라고 출세할 거라고 했다/말이 씨가 되어/나는 지금 '출세' 하여/잘 살고 있다/이 세상 황금을 다 준다 해도/맞바꿀 수 없는/노동자가 되어/땀 흘리며 살고 있다/갑근세 주민세/한푼 깎거나/날짜 하루 어긴 일 없고/공짜 술 얻어 먹거나/돈 떼어 먹은 일 한번 없고…'

서정홍의 시 '58년 개띠' 는 민초(民草) 58년생의 회한을 담고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58년 개띠라는 말이 독특한 어감을 풍기며 회자되고 있다.

영화의 소재로도 등장했고, 58년 개띠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연극 '용띠 위에 개띠' 가 인기를 끈 적도 있다.

1958년생은 전후 베이비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태어나 말 그대로 '개떼처럼' 수가 많고, 커가면서 치열한 입시경쟁.취업난에 시달린 데다 가까스로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최근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속된 표현으로 '개피를 본' 세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소설가 은희경의 신작 '마이너리그' 도 58년 개띠 남성 네명의 인생행로를 그리고 있다.

군대 신병의 계급을 일병으로 묘사하는 등 여성작가로서의 약점이 엿보이긴 하지만, 콩나물교실.국민교육헌장.10월유신.학도호국단장.종합영어.긴급조치, 10.26 등 58년생의 성장사를 수놓은 키워드들을 다채롭게 엮어놓았다.

'어디를 가나 사람에 치이는 일은 우리들이 태어날 때부터의 숙명이었다' 는 작중인물의 독백은 의미있다.

국회의원 2백73명 중 58년생은 10명이다. 이 중 추미애 의원(민주당)은 "너무 앞서나가지도, 너무 보수적이지도 않은 세대" 라고 스스로를 평했다.

"우리 세대는 시대상황이 너무 엄혹했던 탓에 386세대와 달리 '행동파' 들이 사회 중심부에 들어오지 못하고 희생돼 버렸다" 고 秋의원은 진단했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58년생이 '낀 세대' 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어릴 때 직.간접적으로 보릿고개를 겪었고 산업화의 혜택과 그늘을 경험한 데다 30대 후반 들어 뒤늦게 정보화 흐름에 턱걸이로 합류한 '폭넓은 세대' 로 볼 수도 있다" 고 지적했다.

어쨌든 베이비붐 세대가 40대 중반에 접어든 것은 다져온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발휘할 때가 왔다는 뜻도 된다. 각자 자리잡은 곳에서 힘들 내시길.

노재현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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