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대통령의 언론인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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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뉴스위크 한글판(25일자)에 실린 인터뷰에서 정부의 언론개입은 언론개혁을 희망하는 여론에 따른 조치였다고 밝혔다.

언론사 세무조사와 신문고시 부활 등 작금의 신문간섭이 여론의 요청에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金대통령은 이어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언론사 소유구조 문제와 편집 독립성 문제엔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있고, "세금을 공정하게 내고 광고나 구독영업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라는 두 가지" 만 개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이 신문 개입의 정당성으로 거론한 '여론' 의 정체가 궁금할 뿐더러 인터뷰에 나타난 金대통령의 언론관 전반에 적잖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金대통령은 "국민의 80%와 언론인의 90%가 언론개혁을 원하고 있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기관과 조사방법.질문문항 등에서 공정성과 정밀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만약 질문문항이 정치.사회적 정황을 도외시한 채 '언론이 개혁돼야 하느냐' 식으로 돼 있다면 그 답은 뻔하다.

마치 어린이에게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하느냐' 고 묻는 도식적 질문과 다를 바 없다. 최근 한 일간지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언론사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 조사가 정부에 대한 언론의 비판과 견제를 약화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느냐' 는 질문에 '있다고 본다' 가 63.4%로 '없다고 본다' 20.2%보다 높게 나타났다.

언론개혁도 언론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응답이 70.7%였으며 정부.국회가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은 21.5%에 그쳤다. 정부가 여론을 바탕으로 신문 개입을 시작한 것이라면 이러한 여론은 앞으로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金대통령은 정부가 개입하는 게 두 가지라며 그 하나로 "언론도 영업인 만큼 정당하고 투명하게 세금을 내야 한다" 고 꼽았다.

우리가 거듭 천명한 바 있지만 정당한 세무조사라면 어느 누구도 반대할 리 없다.

수백여명의 조사원이 대거 투입돼 몇달씩이나 강도높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세무조사를 정상적 정부 행태라 할 수 있는가. 세무사찰에 준할 그 정치적 의도를 경계하고 그것이 언론개입의 고리가 될 것임을 우려하는 것이다.

金대통령은 "언론도 광고나 독자를 얻는 데 있어 공정한 태도를 갖고 모든 언론이 같은 기회를 가져야 하고 소수언론이 독점하는 일이 없도록 공정한 광고나 독자확보가 이뤄져야 한다" 고 밝혔다.

이야말로 독자와 광고시장을 두루 배분하겠다는 취지로 시장경제의 자유경쟁원리를 부인하는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독자나 광고란 신문사의 강요나 강제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독자나 기업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에 강요와 억지가 개입될까봐 신문사 스스로 자율규칙을 만들어 놓고 불공정 거래를 막고 있다.

광고시장의 공정한 분배란 권위주의 국가의 언론매체에나 해당하는 위험한 발상이며 신문경영에 정부가 개입하면서 언론기업을 통제한다는 발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장경제 논리와 언론의 자율적 개혁을 줄기차게 주창해 온 金대통령이 언론의 이런 현실 논리를 모를 리 없다고 본다. 뭔가 잘못 전달됐거나 표현방식에 착오가 있었으리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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