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월드컵 코앞 두고 한·일전 왜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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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대한축구협회가 월드컵 본선을 코앞에 둔 5월 24일 일본과 대표팀 평가전을 치르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본선 준비에 득보다는 실이 클 거라는 우려가 축구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축구협회는 한·일 정기전 부활에 의미를 둔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올해부터 정기전을 치르기로 했다. 홈 앤드 어웨이로 2경기를 치르려면 날짜가 그때뿐이다”고 설명했다.

양국의 축구 교류도 좋지만 시점이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팀은 5월 16일 서울에서 남미의 에콰도르와 평가전을 치른다. 조별리그에서 만날 아르헨티나에 대비한 경기다. 6월 4일 전지훈련지인 오스트리아에서 치르는 스페인과의 평가전은 강팀을 상대로 자신감을 키우자는 뚜렷한 목표가 담겨 있다. 일본은 아시아 정상권이지만, 한국은 본선에서 아시아 팀을 만나지 않는다. 평가전 상대로 적합하지 않은 첫 번째 이유다.

한·일전 성격상 분위기가 과열되기 십상이라 자칫 부상자가 나올 수도 있다. 더구나 일본은 지난달 동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에 1-3으로 패한 터라 설욕을 벼르고 있다.

축구인들은 반대 일색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대표팀을 맡았던 김호 감독은 “본선을 앞두고 한·일전은 실익도 명분도 없다. 5월 말이면 대표선수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본선 준비에 집중해야 할 때인데 웬 한·일전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정무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태프도 협회의 한·일전 결정에 부담스러운 눈치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의 교훈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대표팀을 이끈 차범근 감독은 지난달 중앙일보 기획 시리즈 ‘월드컵 감독에게 듣는다’ 인터뷰에서 한·일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98년 4월 1일 한·일전을 치르느라 같은 날 열린 네덜란드 경기를 볼 기회를 놓쳤다.

차 감독은 본선 상대인 네덜란드 전력을 분석하기 위해 유럽에 건너갈 계획이었으나 일본전에 몰두해야 한다는 축구협회 결정에 따라 관전을 포기했다. 결국 한국은 본선에서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했다.

당시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 치른 중국과의 평가전도 손해가 컸다. 흥행은 됐지만 중국전에서 부상으로 쓰러진 황선홍은 월드컵 본선에서 벤치 신세를 져야 했다.

축구협회는 2022년 월드컵 유치를 위해 한·일 정기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지만 아무래도 논리가 궁색하다. 월드컵 유치 경쟁을 다자 구도에서 한·일의 양자 구도로 바꾸려는 의도라고 하지만 그게 꼭 월드컵 직전에 열려야 하는지는 납득하기 힘들다.

이와 관련, 축구인들은 협회가 확실한 흥행카드인 한·일전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게 주목적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만에 하나 그런 차원이라면 축구협회는 한·일전 개최를 재고하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현 시점에서 착실하게 월드컵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기 때문이다.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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