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가림 '항아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누가 밤새 길어다 부었는가

뒤뜨락 항아리에 가득 고인

저 찰랑이는 옥(玉)빛 눈물의 은하수

- 이가림(1943~ )의 '항아리'

우리 전통가옥의 뒤뜨락에는 으레 장독대가 있어 거기에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게 마련이다.

그 중 빈 항아리에는 열려진 채로 맑은 물이 가득 찰랑거리고 있는데 아마도 그것은 고여 있는 빗물일 터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수면에도 파아란 하늘이 있고 흰구름이 흘러간다. 밤에는 하늘의 찬란한 별들이 내려와 저희끼리 소곤거리기도 한다.

아, 그러고 보니 그 항아리의 맑은 물은 어젯밤 별들이 흘린 눈물들이었구나. 조선 여인들의 정한(情恨)과 희원을 이렇게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도 드물 것이다. 시는 길게 써 좋을 것이 없다.

오세영(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