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익에 눈멀어 학교 용지 아무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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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는 9월 개교하는 경기도 파주시 송화초등학교 공사장. 학교 뒤편엔 5천기(基) 규모의 N공원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2천9백여가구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K사측이 묘역에서 8m 가량 떨어진 곳을 학교용지로 지정한 것이다.

N공원묘지 관리사무소 박대일(63)소장은 "장례 행렬과 성묘객 방문이 매일 이어지는 묘역 바로 옆에 어떻게 학교를 지으려는지 이해가 안된다" 고 말했다.

같은 파주시 교하면의 B아파트 단지내 동패초등학교 건립 예정부지. 학교 부지 경계선을 따라 3만4천V짜리 고압선이 지나간다.

시공회사측은 결국 학교 부지를 옮기기로 결정, 이전 검토지역의 군부대와 협의하고 있다. 최근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함께 건립되는 학교들이 위험하거나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곳에 세워지고 있다. 아파트 개발업자들이 학생들의 공부나 안전보다 개발이익만 앞세워 후미진 곳에 학교용지를 지정하기 때문이다.

◇ 학교 주변 위험시설〓동패초등학교처럼 학교 주변에 고압선이 지나가는 초.중.고교는 전국에 54곳이나 된다. 경남 창원공고는 운동장 복판으로 고압선 여덟개가 지나간다.

이 학교의 교사는 "여러차례 고압 송전선을 옮겨달라고 요구했는데도 소용이 없다" 고 말했다.

부산 B초등학교는 학교 담으로부터 40m 거리에 변전소가 있다. LPG 충전소 등 가스 저장소가 주변에 위치한 학교가 50여곳, 석유 저장소가 있는 학교가 50여곳이다. 4차선 이상 도로와 교문이 인접해 등.하교 길이 위험한 학교도 1천5백여곳이다.

경기도교육청 학교설립기획과 관계자는 "아파트 개발 업체들이 푹 파인 논바닥에 학교를 짓겠다고 할 정도로 부적합한 용지를 내놓는다" 고 말했다. 개발업체들은 시장.군수로부터 개발사업계획을 승인받는 과정에서 학교 건립과 관련해 교육감들이 내는 의견을 무시하기도 한다.

교육부 교육시설담당관실 관계자는 "개발업자는 분양금을, 시.군은 세수 확보를 위해 아파트 건설에만 신경쓸 뿐 학교는 안중에도 없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 개선책〓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용지 확보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을 개정할 방침이라고 13일 밝혔다.

3백가구 이상의 주택개발 사업에 해당 교육청의 동의(학교용지 확보 여부)가 없으면 자치단체가 사업승인을 내줄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학생의 안전과 면학 분위기를 위해 학교의 부지 선정 때부터 교육청이 간여하겠다는 뜻이다. 이 법은 상반기 중 개정, 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이와 함께 학교용지를 새로 확보하기 힘든 경우 ▶운동장 없는 빌딩형▶12~18학급 수준의 미니형▶같은 부지에 중.고교를 함께 건립하는 복합형 학교를 허용키로 했다.

강홍준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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