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 '카페 신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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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연극 ‘카페 신파’는 연극을 만들어가는 일상을 그린다. 연출력이 탄탄하고, 무대장치도 배우들의 연기와 잘 어울렸다.

'카페 신파'(산울림소극장, 11월 28일까지)는 특별한 작품이다. 작가 김명화와 연출 임영웅, 무대미술 박동우, 그리고 배우 전무송.정상철.전국환.이혜경 등 연극계의 쟁쟁한 멤버들이 함께 만나 만들어 냈다는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요즘 유행하는 연극 사조와 달리 이 연극에서는 보기 드물게 리얼리즘 미학의 진수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공연에는 무엇보다 작가의 탄탄한 극 구성이 돋보인다. 어느 흐린 날 밤, 우중충한 카페 '신파'에 일상처럼 찾아들어 그들만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연극인들의 모습이 이 작품의 표면적인 사건 진행의 전부다. 이들은 각각 연출가(정상철), 배우(전국환.이영석.박남희), 작가(박상종), 비평가(박인서), 기획자(김기연) 등의 역할을 맡으면서 실제 연극 만들기의 일상을 보여준다. 여기에 작가인 지환과 재영(정재은)의 사랑 싸움과 종업원의 연극 오디션 연습이 양념처럼 끼어 있다.

작가는 카페의 제한된 공간을 일정한 구역으로 나누어 인물의 행동과 대사들에 원숙한 솜씨로 철저한 시간적 질서를 부여한다.

이 공연이 주는 또 다른 재미는 연극 만들기와 관련된 일상사들을 통해 연극의 의미 이면에 놓인 인생의 깊이를 생각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들의 대화 속에 슬며시 끼어든 삶의 '냄새'가 카페 신파가 품고 있는 우중충한 이미지와 맞물리면서 작가는 인생이란 잘 짜인 리얼리즘이 아니라 '신파'와 같은 '낭만' 또는 '센티멘털리즘'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극중 관객인 노인(전무송)의 시선과 개입으로 구체화한다. 연극인들의 대화에 끼어든 노인의 '백리향' 향기에 대한 추억담을 통해 연극은 결국 인생 그 자체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의 리얼리즘은 낡거나 통속적인 것이 아니다. 극중 작가인 지환의 창작 대본 제목이 '카페 신화'인 것에서 보듯, 사실 이 작품은 제법 포스트모던한 메타 연극적인 구성을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도 작가의 재치가 빛나는데, 연출은 이러한 작품의 견고한 실타래를 첫 장면 노인의 시선 처리에서부터 섬세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연출에 힘을 보탠 잘 짜인 무대장치와 배우들의 앙상블은 리얼리즘 연극의 진수를 보여주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양승국(서울대 국문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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