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 'IT꽃' 활짝 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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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서울 구로3공단에 위치한 세계정밀. 지난 10여년 동안 농기계 등 각종 중소형 기계를 만들어온 회사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구로공단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재탄생하면서 이 회사는 정보기술(IT) 없이는 존재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초까지 회사는 기계설계와 제작과정을 대부분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평균 기계제작기간이 1년 걸렸고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져 회사 사활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이때 공단이 디지털단지로 바뀌면서 입주한 소프트웨어 제작사인 케디캠의 3차원 통합관리형 소프트웨어가 구세주로 다가왔다.

백우인 사장은 "곧바로 채택했죠. 지금은 컴퓨터에서 설계가 완성되면 곧바로 공장으로 전송돼 가공작업에 들어갑니다.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컴퓨터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 해결하기 때문에 설계에서 제작까지 소요된 시간과 비용이 예전의 3분의1로 줄었다" 고 말했다.

제작기간이 줄어들다 보니 가격경쟁력이 되살아나 지난해에만 4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 2월에는 방글라데시에 공업용 특수 포장비닐을 제작하는 '엑스트루드' 기계납품을 시작으로 18개국에 60억원어치의 수출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에게 '까르뜨네트' 라는 브랜드로 익숙한 여성패션업체 ㈜마리오는 현재 구로2단지 내에 사옥을 짓고 있다. 공단 부근 독산동에 있는 본사를 이곳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총 8층에 연건평 5천6백평 규모로 6월 완공예정인 신사옥은 건물 내에서 생산과 판매.디자인.물류센터 등이 원스톱으로 처리되는 국내 유일의 패션공간이다.

서울 구로구와 금천구에 위치한 옛 구로공단이 급변하고 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을 바꾼지 1년3개월. 이젠 어디에서도 노동집약적 산업의 냄새는 찾을 수 없다. 대신 첨단 벤처기업과 IT가 도입된 전통기업만이 즐비하다.

구로공단은 1964년 국내 수출공단 1호로 출범하면서 70년과 80년대에 한국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산업단지. 87년에는 60여만평의 광활한 단지에 7만5천여명의 근로자가 밤새워 일하며 한국 수출의 10%를 담당할 정도였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경공업이 기술집약산업으로 대체되면서 전통 굴뚝기업들이 하나둘 둥지를 떠나기 시작, 현재는 종업원이 3만2천여명으로 줄었다.

공단의 변화는 입구에 자리잡은 한국산업단지공단(http://www.kicox.or.kr.키콕스)벤처센터가 대변한다. 지난해 10월 완공된 이 건물에는 59개 첨단벤처사가 입주, 미래의 IT 패권을 노리고 있다. 센터 부근에 입주한 첨단기업을 합하면 모두 4백30여개로 공단 전체(7백40개) 첨단기업 입주비율이 58%에 달한다.

2010년까지는 첨단벤처기업이 1천5백여개사로 늘어나 단지내 첨단기업 비율은 80%에 달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공단측은 키콕스센터 부근에 지상 18층(연면적 1만5천5백30평)규모의 제2 벤처센터를 2003년까지 건설할 예정.

이효진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은 "세계 경제는 지금 IT가 전통산업과 융화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급변하고 있다" 고 전제하고 "이같은 면에서 서울디지털단지는 앞으로 굴뚝기업이 첨단기업과 병존하며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지식복합산업단지로 거듭 태어날 것" 이라고 말했다.

키콕스센터에 입주하는 벤처기업은 다른 단지와 달리 입주 3년 내에 가시적인 생산품을 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IT가 오프라인 기업과 연계해 최고의 부가가치를 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9층에 입주한 아이디즘은 단 3명의 연구진이 1년 연구 끝에 최첨단 통합형 게임패드인 '스페이스데블피시' 를 개발해 대만의 유명 게임개발 및 유통업체인 간마니아와 최근 1천만달러의 수출계약을 했다. 또 독일의 줄라우프 등 유럽과 미국.캐나다 업체들과 수출계약을 진행 중이다.

최원석 연구개발과장은 "기술만 파는 다른 벤처단지와 달리 이곳에서는 기술이 곧바로 생산시설로 옮겨져 상품화된다는 게 최대 장점" 이라고 말한다. 아이에스모트코리아는 전통산업의 메카였던 구로공단에서 이달 중 세계 최고의 전기자전거를 출시하겠다는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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