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가 12초 안에 공 던지면 여의도 5배 땅에 나무 심는 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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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폭설이 내렸어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꽃이 핀다. 프로야구가 시작됐다. 3월 6일부터 시범경기로 예열했고, 27일 두산-KIA의 개막전이 잠실야구장에서 열린다. 올해 야구팬들은 그라운드에서 달라진 몇 가지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인천 문학구장엔 태양열 집광판이 설치되고, 불펜 투수들이 이동할 때 전기자동차가 다닌다. 프로야구는 올 시즌 지구 지키기를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야구장에서 몇 가지만 지켜도 지구를 푸르게 지킬 수 있단다. 그라운드에서 지구를 지키는 방법 9가지.

1 롯데 외국인 타자 카림 가르시아는 범타로 물러나는 순간 타구를 지켜보다가 발을 들어 배트를 ‘우지끈’ 부러뜨린다. 이럴 땐 묘목을 심어 울창하게 가꾼 숲에서 고목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르시아, 제발 배트 부러뜨리지 말았으면 한다. 억지라고? 개인의 습관으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수년 전만 해도 야구장에서 선수들이 갑작스레 부상할 때마다 트레이너가 와서 뿌리던 ‘칙칙이’(스프레이 소염제)를 기억하는가. 스프레이를 뿌릴 때 나오는 프레온 가스는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그래서 뿌리는 소염제 대신 바르는 소염제가 등장했다. 항상 해왔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은 하지 말라. 롯데구단에서 정색하고 ‘가르시아 배트 부러뜨리기’ 세리머니를 중단해 주면 안 될까?

2 스포츠 이온음료수를 마신 뒤 컵을 바닥에 던져버리는 장면이 TV에 비친다. 1회용 컵이다. 해바라기 씨를 우물우물 씹다가 더그아웃에 ‘퉤퉤퉤’ 분사한다. 멋 하나도 없다. TV로 야구 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따라 할까 겁난다. 개인 컵을 비치하는 것도 구단이 조금만 신경 쓰면 가능하다. 경기 중 쓰는 타월도 줄이자. 프로골프에서도 한 경기에 타월 한 장 쓰겠다는 선언이 나왔다. 프로야구라고 안 될 것 있나?

3 불행하게도 야구장은 1회용 천국이며 패스트푸드의 향연장이다. 핫도그와 피자, 통닭의 기름 냄새가 구장 곳곳에서 팬들을 유혹한다. 올해 인천 문학구장에선 재미있는 실험 하나가 진행된다. SK 와이번스가 3억원을 들여 외야 관중석 일부를 잔디밭 관람석으로 조성한다. 폐기해도 분해가 쉽지 않다는 플라스틱 의자 대신 푹신한 잔디에서 야구를 즐긴다. 소풍 가는 느낌이 들 것이다. 소풍 갈 땐 음식을 싸가야 한다. 가볍게 입고 가벼운 음식을 들고 가볍게 노닐고 가볍게 떠나는 것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쉼터이니 다소 고생스럽더라도 도시락을 싸고 싶어진다. 아들과 딸이 누워 있던 잔디에 쓰레기 마구 버리고, 침 뱉을 사람도 드물다. 덜 먹고 덜 버리게 되니 경기 종료 후 배출하는 쓰레기 또한 줄어든다. 콘크리트 스타디움을 그린 파크로 변신시킬 수 있다.

4 원정경기에 나선 선수 A의 하루 일과를 쫓아보자. 경기 시작 2시간 전 뷔페식으로 차려진 원정 더그아웃 간이 식사가 있다. 여기서 배출되는 1회용품과 쓰레기도 만만치 않다. 몇몇 구단은 지난해부터 원정경기 더그아웃에서 경기 전 식사를 하지 않고 있다. 경기장으로 떠나기 전 호텔에서 가볍게 먹고 나오면 되기 때문이다. 원정팀 더그아웃의 청결 및 위생상태도 썩 좋지 않은데 굳이 야외에 상을 차려 놓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대구의 선수단 원정 식사를 책임지는 모호텔 지배인(익명 요청)의 말을 들어보자. “열량과 칼로리를 계산해서 균형 있는 식단을 제공해도 식사 전 짬뽕을 시켜 먹는 선수도 있다. 아예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선수도 있다. 손도 대지 않고 버리는 음식이 얼마나 많겠나.”

5 타석에 들어선 A선수, 배경음악으로 요란한 랩음악을 골라서 구장 앰프를 때린다. 야구가 리듬 타는 스포츠인 것 맞다. 그런데 옛날 선배들 타석에 등장할 때 음악 없이도 잘 쳤다. 앰프 끄자. 한국 프로야구에서 타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배경음악을 선택해 틀어주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다. 커다란 잠실구장을 쓰는 서울 구단이 먼저 시작했고, 이어 다른 구단이 뒤를 이었다. 순간 순간 이어지는 브레이크 타임에 팬들이 지루해할까 봐 구단들은 서둘러 치어리더를 동원하고, 앰프를 크게 튼다. 소음공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6 투수들의 제구력 다듬기. 이건 사실 어렵긴 어렵다. 하루 이틀 만에 되는 것도 아니다. 다행히 한국 프로야구는 올해부터 스트라이크존 양 옆을 공 반 개씩 확대했다. 투수님들, 과감한 승부 해서 결판 내세요. 로진백 만지고, 포볼 낸 뒤, 유인구 남발하면 전광판과 조명 사용 그만큼 많아집니다. KBO는 경기시간 단축을 위해 구체적인 룰 개정을 선언했다. 올해 프로야구에서 누상에 주자가 없을 때 투수는 12초 이내에 공을 던져야 한다. 야구는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야 플레이가 진행되는 스포츠다.

투수가 빨라지면 타자도 머뭇거릴 틈이 없다. 자연스레 시간 단축 효과가 생긴다. 지난해 프로야구 경기당 평균 시간은 3시간22분이다. 미국의 2시간52분보다 30분이나 더 걸렸다. 일본의 3시간13분보다도 9분이나 길다. 과도하게 긴 타격 준비 동작과 투수의 몸 풀기, 타자의 타석 벗어나기는 ‘지구를 해친다’. 짧은 시간에 소화하는 게 야구의 본질은 아니지만 축축 늘어지는 엿가락 야구가 승부의 본령도 아니다. 지구는 지금 그렇게 속도감 있는 야구가 필요하다.

7 그리고 김성근 SK 감독님과 조범현 KIA 감독님, 야간훈련 자제해 주세요. 좀 힘들더라도 오전 훈련으로 대체해 주세요. 부득이한 경우에 하는 야간훈련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가외 훈련은 강제하지 않는 게 낫겠다. 경기시간을 줄여 전기 사용을 억제하겠다고 프로야구가 아무리 선언해도, 야간훈련 해버리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8 야구장 간 팬들은 당장 이것부터 해보자. 부산 사직구장의 롯데가 유행시킨 주황색 쓰레기 봉투 응원을 구단마다 색깔 달리 해 따라 해보자. 주황색 봉투는 경기 중 멋진 응원도구로 사용되지만 종료 후엔 자신이 배출한 쓰레기를 담아오는 도구다. 두산 베어스의 지난해 구장 정리 비용은 1경기당 320만원이었다고 한다. 두산 관계자는 “쓰레기가 적게 나올 경우 자연히 비용도 줄어들고, 시간도 덜 소요된다”고 말했다.

9 팬들이 할 일 또 하나. 이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구단에 응원도구 보상 판매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구단은 팬들이 응원도구와 수건 등을 버리지 않고 판매처로 반납할 경우 구입 가격의 20%를 돌려준다든가 하는 방안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면 쓰고 남은 응원도구를 버리는 이들이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마지막 실천사항 하나. 푸드코트를 지날 때 “패스트푸드=독약이야”라고 자기 최면을 걸자. 실제로 야구장에서 파는 음식은 가격 대비 영양가 면에서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야구장 소풍 갈 땐 집에서 싸가는 음식이 제격이다.

김성원 기자 rough197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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