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 역점 사업도 부처 간 밥그릇싸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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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은 1월 13일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 서명했다. 이 자리에서 “이제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녹색성장 선도국이 될 수 있는 강력한 법적·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법 시행(4월 14일)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정부 내부에서 혼선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정책을 추진할 주무 부처가 확정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기업 등의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절약 목표를 지식경제부와 환경부가 공동으로 관리·감독하도록 명시한 시행령 안(案) 때문이다. 입법예고까지 마친 시행령 안이 그대로 확정되고 법과 함께 발효된다면 두 부처의 어색한 동거(同居)가 연출될 판이다.

지경부와 환경부는 각각 에너지 절약과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담당해온 연고를 들어 각자 주무 부처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에너지 사용에 따른 것인데도 두 부처가 상이한 규정과 지침을 고집하다 보면 정책의 통일성을 잃고 혼란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 당장 기후 변화와 녹색산업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 것인지 정책 방향의 혼선도 우려된다. 기업들로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헷갈리고 이중 잣대에 맞추려다 보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녹색성장 정책은 5개년 계획(2009~2013년)에 따라 신성장 동력 창출과 기후변화 적응 등에 정부와 민간에서 107조여원을 투자하는 MB정부의 야심 찬 사업이다. 두 부처의 주도권 싸움에는 예산·인원 배정과 위상 제고 등 부처 이기주의가 깔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의 효율성 논쟁이 아니라 밥그릇 싸움인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조정력은 작동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 소속 녹색성장위원회는 녹색성장 정책을 심의·조율한다. 국무총리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고,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비롯해 지경부·환경부 등 여러 장관들이 위원으로 참여하지만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제 경제단체들은 정부에 건의문을 내고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 일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법 시행일까지 법제처 심사·국무회의 등의 절차가 아직 기다리고 있다. 그때까지 교통정리가 될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