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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들에게 격려를 보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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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히틀러와 괴링이 6700여 대의 전폭기로 연일 영국 본토를 공격 중이던 1940년 8월 20일 처칠 총리가 하원에서 한 연설의 일부다. 전투기 조종사의 중요성과 역할을 표현한 명언이다. 우리에게도 한국전쟁 때 작전 중 장렬히 순직한 이근석 장군, 임택순 대위 등 수많은 선배 ‘신념의 조인(鳥人)’들이 피 흘려 조국을 지켰다. 전투기 조종사의 생활은 전시와 평시(平時)가 따로 없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의 명장 베지티우스 경구대로 평시에 땀을 많이 흘려야 전시에 피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엄정한 군기와 규정 절차의 준수 하에 강하고 실전 같은 훈련만이 생존과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

전투기 조종사의 역할과 항공력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미래전에서도 항공우주력의 역할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항공기 시스템도 복잡해지고 한 대에 수만 달러에 불과하던 가격이 수억 달러에 이른다. 그것을 다루는 이는 한 사람의 조종사다. 고가의 국가 장비를 다루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요구 수준과 훈련 강도도 높아졌다.

과거 조종사들은 ‘빨간 마후라’가 상징하듯 부귀영화보다 명예를 중시했다. 어려움도 사나이 의리와 전우애로 인내했다. 하지만 신세대 조종사들은 다르다. 선망의 대상인 멋지고 자랑스러운 전투기 조종사들이 조기 전역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개선하려면 조종사들이 보람과 긍지를 갖고 군 복무를 오래 할 수 있는 여건을 국가적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 국방예산 운영은 선택과 집중이다. 노후한 항공기를 교체하고 조종사의 정원과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희망과 국민적 자긍심을 높여 줘야 한다. 왜 선진국들이 공군력을 중심으로 국방개혁을 하는지, 김일성-김정일이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오극열과 조명록을 군 최고 위치와 측근에 두고 조종사들에게 차관급 대우를 해주는지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공군 전투기와 육군 헬기 사고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참 군인의 길을 걷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바친 순직 조종사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께 심심한 조의와 위로를 드린다. 오늘도 조종간을 잡고 영공 방위 임무를 수행하는 후배 조종사들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역사적 사명을 재삼 인식하고 배전의 충성과 헌신을 다하길 당부한다.

최명상 전 공군대학 총장·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