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칼럼] 오보 줄이려면 기자 대폭 늘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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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직전 우리 신문의 사설제목은 '외신의 한국경제 흔들기' 와 '외신의 한국경제 때리기' 등이었다. 방송은 더욱 가관이었다.

바로 며칠 뒤 언론인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고 관료와 경제전문가에게 속았다고 자탄했다. 그 뒤 많은 사람이 언론계를 떠났고 남아있는 사람도 임금이 크게 깎였다.

2001년 3월 주요 뉴스는 의료보험 위기였다. 개혁과제인 의약분업이 되면 나라가 바뀔 것이라는 식의 대대적인 보도를 한 것이 지난해의 일이었다. 한 기자는 의사협회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언론인의 의료보험료 부담도 늘어났다.

교육위기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수십년간 이 문제가 돌출할 때마다 언론은 전문가 코멘트와 함께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교육위기는 더욱 악화됐다. 교육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왜 교육.의료보험.경제 등 각 분야에서 위기상황이 반복되는 걸까. 정치인.관료.학자.언론인 모두 그대로다. 언론은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기댈 곳이 없다. 대통령이 속았다고 자탄하지만 그동안 속은 사람은 국민이요, 화낼 사람도 국민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는 8천억원의 매출액을 자랑하는 방송사, 4천5백억원을 넘는 신문사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왜 위기가 계속될까. 언론은 건물.카메라.윤전기 등 하드웨어에는 투자를 많이 했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 언론인에 대한 부적절한 투자가 오늘의 사회위기와 관련해 언론이 원성을 사게 된 한 원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국내 최대 신문사의 기자가 약 3백40명인 데 비해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2천7백명이다. 아사히는 조간 40면, 석간 24면 등 매일 64면을 발행한다.

반면 우리 신문은 56면이다. 기자수는 7분의 1이지만 지면수는 엇비슷하다. 한국은 신문 한면을 제작하는 데 6명, 아사히는 42명을 투자한다. 아사히 신문엔 정성이 가득하다. 오보할 여지가 줄고 명예훼손으로 소송까지 갈 필요도 없다.

특파원수는 지난해의 경우 우리 신문사 가운데 가장 많은 곳이 11명, 아사히는 50명이다. 한국의 신문.방송사 특파원은 통틀어 1백4명이다. 특파원은 우리의 독자적인 시각에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보주권과 관련된 문제다.

취재기자의 전문화도 중요 과제다. 권력의 '감시견' 역할을 할 언론인을 대폭 늘려야 한다. 매년 2백억원만 투자하면 기자 4백~5백명을 추가 투입할 수 있다. 그런데 뉴미디어 사업, 박찬호에는 수백억원을 들인 방송사도 기자전문화엔 별로 관심이 없다.

취재방식도 19세기식이다. 출입처는 있고 전문분야는 없다. 기껏해야 특정분야를 오래하면 전문기자가 되는 인사시스템이다. 출입처는 1, 2년이면 바뀐다. 수차례 이를 거듭하면 언론인이 아닌 관리자가 된다.

경력 5년도 채 안된 기자가 국가경영을 재단한다. 무모함은 있되 관록은 없다. 죽을 때까지 펜을 잡고 싶어도 불가능한 것이 오늘 한국 언론의 자화상이다. 지식근로자인 언론인이 건강진단은 환영하지만 정작 핵심역량이라 할 수 있는 실적평가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강하다.

강한 언론은 강한 언론인에서 나온다. 언론인은 국민, 즉 시장의 신뢰를 받는 스타가 돼야 한다. 정권만 비난하면 스타가 될 수 있는 것은 '19세기형 언론인' 이었다. 21세기는 윤리의식과 전문성을 갖춘 스타언론인을 부른다. 매출액이 아니라 국민 신뢰를 받는 스타언론인이 많이 있는 언론사가 1등이 되는 시대다.

허행량 <세종대 교수 ·매체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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