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활 이렇게 한다] 10. 빈손창업 '홀로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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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 충무로에서 홍보물 기획업체인 디자인천국을 운영하는 남정근(39.prline@chollian.net)대표는 창업 실패와 이혼의 좌절을 딛고 일어선 여성 경영인이다.

대학졸업 후 재야 운동권에서 활동하던 南대표는 경제적 자립도 하고 자신의 디자인 소질을 살리겠다며 1992년 서울산업대학 야간 시각디자인학과에 편입했다. 낮에는 디자인학원을 다니며 틈틈이 디자인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창업의 꿈을 키웠다.

첫 창업은 1994년. 가족의 도움으로 서울 마포에 사무실을 빌려 디자인업체를 차렸으나 일감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1년도 안돼 문을 닫았다.

결혼 후 다시 인천에서 창업했지만 이번엔 가정불화로 이혼하면서 중도하차했다.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온 그는 취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 육아문제에 걸린 취업전선〓생계를 유지하려고 그는 서울 을지로 영세 인쇄업체에 들어갔다.

그러나 밤샘 일이 잦아지면서 육아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던 차에 외환위기로 회사마저 어려워지면서 퇴사했다.

이후 컴퓨터 한대를 어렵사리 장만해 집안에서 디자인 품앗이도 하고 보험설계사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 때 지하철 좌석에 남은 신문을 보다 우연히 정부의 '실직여성가장 지원프로그램' 을 접하고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의 문을 두드렸다.

◇ 실패를 거울 삼은 세번째 창업〓99년 5월 南대표는 근로복지공단 도움으로 지금의 사무실을 얻었다.

전세등기권은 근로복지공단이 갖고 지원금(전세 5천만원)의 이자(연리 6%)를 매달 내는 방식이어서 창업자금 부담을 덜었다.

친구에게 어렵사리 50만원을 빌려 중고가구시장에서 사무실집기를 마련하고, 주변 옥외간판 제작업체의 홍보전단을 디자인해주는 조건으로 회사 간판을 달았다.

南대표는 실패한 두 번의 창업과는 다른 경영 방식을 택했다. 디자인 일감이 들쭉날쭉한 점을 감안해 정식직원을 고용하지 않았다. 대신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에게 사무실 공간을 빌려줘 일도 같이 하고 사무실 유지비용을 분담했다.

문제는 운영자금. 그는 일감을 수주할 때 선금을 받는 조건으로 납품가를 낮춰 초기 운영자금을 마련하고 어음 거래를 하지 않았다.

南대표는 "번듯한 사무실에 직원도 여럿 있어야 사업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며 "창업 초기 고정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실패확률을 줄이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 홀로서기 기틀 마련〓디자인천국은 최근 들어 월평균 1천만원 안팎의 매출에 3백만원 가량씩 수익을 남기고 있다.

아직 내세울 수준은 아니지만 南대표는 홀로서기의 기틀은 마련했다고 말한다.

사무실이 인쇄업체가 밀집한 곳에 있어 창업 1년여 만에 고정거래처도 늘었고, 몇몇 중소제조업체의 홍보관련 디자인 일을 전담하고 있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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