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NFU 카드’ 꺼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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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버락 오바마(사진) 미국 대통령이 대폭적인 핵무기 감축 의사를 공표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가 지난해 4월 체코 프라하에서 밝힌 ‘핵 없는 세상’ 비전은 노벨평화상 수상의 중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핵무기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은 아직 안갯속이다. 오바마가 제안해 만든 ‘핵안보정상회의’(4월 12~13일)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미국의 포괄적 핵정책 발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9일(현지시간) “여러 문제가 있지만, 특히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 방식을 놓고 오바마 정부 관련 부처와 핵심 인사들 간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지연 거듭된 보고서 발표= 소식통은 9일 “워싱턴 DC 내 매사추세츠 거리(대사관 밀집 지역)와 K스트리트(로비회사·싱크탱크 밀집 지역) 사람들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오바마의 NPR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핵 태세 검토 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를 뜻하는 NPR은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동안 운용할 핵 관련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이를 골격으로 하위 정책이 이어진다. NPR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처음으로 발표돼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이어졌다. 오바마의 NPR이 특히 주목을 끈 것은 그 스스로 핵무기 숫자와 역할의 축소 방침을 밝히면서 “우리의 NPR은 낡은 냉전시대 사고를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다음달 첫째 주가 돼야 NPR 발표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핵안보정상회의 직전까지 진통을 거듭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북한 생화학 무기가 문제= 핵심 논란은 미국이 먼저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NFU(No First Use)’ 정책 도입을 둘러싸고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NFU는 말 그대로 상대방이 핵무기를 먼저 쓰지 않는다면 미국도 핵무기를 꺼내 들지 않겠다는 의미다. 과거 부시 행정부는 이처럼 명확히 규정하는 대신 ‘계산된 모호성’을 유지함으로써 미국의 핵무기 선제 공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반면 미국이 전 세계 핵무기의 획기적인 감축을 선도하기를 바라고, 궁극적으론 지구상의 핵무기 완전 폐기를 희망하는 오바마는 NFU 정책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북한과 이란의 존재가 부각됐다고 한다. 워싱턴 소식통은 “NFU 정책이 도입되면 북한이 핵무기가 아닌 생화학무기로 공격해 올 경우 미국은 재래식 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전쟁 억지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인지를 놓고 정부 내 관련 부처 간에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답변을 통해 “북한이 2500∼5000여t에 달하는 생화학무기를 여러 곳에 분산·저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은 대체로 오바마 정부가 부시 정부와는 차별화된 방식을 꾀하되 명시적인 NFU 정책 도입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민주당 정부는 과거 자민당 정부가 부시 정부의 ‘계산된 모호성’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것과 반대로 NFU 정책 도입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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