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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안 가도 잘살게 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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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대졸 청년 실업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내부적으로 높은 대학진학률에 대한 우려가 있어 왔다. 실제로 한 해에 50만 명 정도가 전문대 및 대학을 졸업한다. 이 중 취업을 원하는 졸업생은 40만 명 내외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채용규모를 고려할 때 이들 중 50%만 취업이 가능하며 나머지 20만 명은 장기실업이나 ‘일하지도 배우지도 않는’(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NEET) 집단으로 남게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졸 청년 실업자는 누적적으로 증가해 ‘100만 명’에 도달할 전망이다. 대학은 산업계로부터도 교육의 수월성을 높이고 학생들에 대한 졸업 자격(qualifying)을 좀 더 엄밀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우리 대학들은 이번 대학진학률 하락을 계기로 좀 더 본격적으로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대학 입학정원 감소에 대응할 수 있고, 대졸 청년 실업 문제의 해소도 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교육이 일류국가 진입을 위한 중요한 동력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첫째, 대학 간 통폐합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학생 미충원으로 인해 경영상 어려움을 겪거나 교육투자의 질적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학은 퇴출되어야 한다.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대학 간 통합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동안 14개 사립대학 간 통폐합, 16개 구조개혁 선도대학의 지정을 통한 입학정원 감축, 국공립대학의 법인화 등을 추진했거나 추진 중에 있지만, 현재 수준으로는 대학 입학정원의 감소 속도에 맞출 수 없다.

둘째, 대학설립 요건을 강화해 요건 미달인 대학의 설립을 방지해야 한다. 현재 설립인가는 받았으나, 대학을 설립하지 못하고 있는 미개교 법인이 24개 대학에 이른다.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인가주의로 다시 전환해 설립요건 충족이 어려운 대학에 대해서는 해산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셋째, 대학은 교육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학생 선발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선발한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시켜 노동시장에 배출함으로써 대학의 브랜드가치를 스스로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면 대학은 교육목표를 전문가 양성에 둘지, 아니면 사회적 리더 육성에 둘지를 전략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연구개발 능력 배양과 현장 중심의 기술교육을 목표 삼아 고등교육의 질을 높였던 세계대학경쟁력 1위 국가인 핀란드의 교육개혁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해 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누구나 다 대학을 갈 수 있는 시대에 특성화가 약한 대학에는 신입생들이 모이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다양한 진로교육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적성 및 능력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대학을 가고 보자는 획일적인 진학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 산업기술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던 전문계고조차도 졸업생의 대학진학률이 73.5%에 이르는 실정이다.

지금과 같이 ‘대학진학→대학졸업→취업’의 획일적 진로 형태가 지속될 경우 청년 실업의 해결은 요원하다. 이를 위해서는 진로 형태의 다변화를 통해 교육과 진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덴마크와 핀란드처럼 중등학교 단계에서 적성·능력 조기 개발을 지원하는 ‘취업지향 진로교육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마이스터고 지원정책은 진로를 다변화하고 대학진학을 하지 않아도 노동시장에서 잘 생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전재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