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임진강 댐' 답답한 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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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임진강 북방한계선 근처에 북한이 조성한 댐은 소규모 발전용으로 임진강 유량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고, 따라서 앞으로 임진강 유역에 물 비상을 초래할 가능성도 거의 없음. "

지난 23일 오후 10시쯤 중앙일보 편집국에 본지 24일자 가판 사회면(31면) 머릿기사(북한 댐건설, 임진강 물 비상)와 관련, 건설교통부로부터 팩시밀리 한장이 도착했다.

해명자료를 보고 기자는 숨이 탁 막히는 느낌이었다.

이날 하루종일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일대를 발로 뛰며 물부족 현상을 두눈으로 확인했는데 정부가 현장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늘어 놓았기 때문이다.

자료가 도착하기 1시간 전인 23일 오후 9시쯤에는 군사분계선 6㎞ 아래의 연천취수장에서는 비상상황이 벌어졌다. 매일 8만여명의 주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3만t을 취수하는 연천취수장의 발전기 3대 중 하나가 수량 부족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평균 2m를 유지하던 취수장 수심도 지난 20일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23일 오후 9시에는 위험수위인 1.5m로 내려앉아 발전기 가동이 중단됐다.

같은 날 임진강 일대 여섯곳의 양수장 가동도 모두 중단됐다. 어른 가슴까지 찼던 강물이 바닥을 드러낸 채 말라붙어 농사철을 앞둔 농민들이 발을 구르고 있었다.

임진강 취수장은 1996년 10월 가동 이후 한여름 가뭄에도 물부족으로 가동이 중단된 적은 없었다. 농민들은 "북한이 댐(3월 15일 완공 추정)에 물을 가둬 놓은 것이 분명하다" 고 입을 모았다.

사정이 이런데 건교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북한이 댐을 건설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난해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고 공개했다. 임진강 일대의 물부족 사태 등에 대해 검토를 했는데 별도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 아닌가.

댐이 완공되고 물부족이 시작된 20일 이후에서야 대책마련에 허둥대는 연천군과 이 일대 주민의 모습은 딱하기만 했다. 남북간 물분쟁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정부가 알고도 쉬쉬한 것인지,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났는데 예측과 달리 물부족 현상이 빚어졌는지 정말 궁금하다.

전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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