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명의 無로 바라보기] 욕설은 침묵으로 삭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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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앞으로는 국회에서 욕설을 하지 않기로 한단다. 정치의 뒷면을 보는 이들이 욕설 소식을 접하면, "계파의 보스나 선거구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참 힘든 쇼를 하는구나" 라고 이해하기는 하지만, 보스나 선거구민조차 부끄러워하는 폭언들도 많았었다.

인터넷에도 욕설이 난무한다. 한 월간지에 의하면, 각기 다른 학교에 다니는 한 쌍의 남녀 고등학생이 임신.낙태.폭력.양가 싸움의 코스를 겪게 됐다. 처음에는 여학생쪽에서 인터넷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는데, 뒤에는 여고생편 남고생편으로 갈라져 각 학교 홈페이지를 욕설로 꽉 채워버렸다.

양교의 학생들은 실명을 쓰지 않고, 익명이나 차명 뒤에 숨어서 폭탄을 던지듯이 욕설을 퍼부었다. 남고생과 여고생들이 각기 양가 가족들을 가장해 욕설을 해 대니, 양가의 관계는 점점 더 악화됐고, 그 피해는 두 남녀 학생에게 돌아왔다.

근래에 해양경찰청의 홈페이지에서도 욕설 대결이 있었다. 처음에는 요트 면허 제도에 관한 찬반 토론으로 시작하더니, 뒤에는 익명 비방과 욕설 대응의 반복 코스로 이어졌다.

*** 내가 안받아주면 되돌아가

독일의 루터는 특정인만 신의 대리인이라는 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종교 개혁' 운동을 벌였다. 신을 믿는 이들은 누구나 전문 성직자와 동등하게 신과 통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잘못을 저지르기로 말하면 최고위직의 성직자에게도 오류가 있고 신과 통하기로 말하면 누구에게나 신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인터넷 시대에는 누구나 기자.보도국장.편집국장이 될 수 있다. 그 점에서 중세 종교개혁 핵심 사상의 하나인 '누구나 성직자' 론과 같다. 인터넷은 폭발력이 대단한 무기다. 이것을 함부로 쓰면 크게 다치는 사람이 있게 된다. 사실 확인도 없이 자기만의 확신으로 비방과 욕설을 쓰면 함부로 총을 쏘아대는 격이다. '누구나 언론인 자격자' 라는 생각의 약점을 드러낸다.

욕설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안다. 욕설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도 당장 욕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욕설을 지우려면 먼저 욕설 하는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 인터넷 폭발력 갈수록 커져

욕설은 기본적으로 인격 부족과 자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데서 나오지만 교육도 많이 받고 공개된 자리에서는 인격자의 행세를 하는 이들도 익명으로는 욕설을 한다. 왜일까. 철두철미하게 원인을 분석하자면 끝이 없을 테고 우선 두 가지가 먼저 떠오른다.

골치 아프게 논리를 전개시키지 않고 막되게 굴어서 상대를 이기겠다는 마음과, 그러려면 일단 상대방의 감정을 흔들어 놓아야 한다는 전략이다. 언쟁을 벌일 때 먼저 흥분하는 이가 패하게 마련이다. 침착한 이는 상대가 아파할 급소만을 골라서 콕콕 찌르지만 마음이 뒤집어진 이는 오히려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하고 약점을 노출하게 된다.

석가에게도 비방과 욕설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뒷날에는 모두 석가를 신봉하게 됐다. 석가는 침묵으로 욕설에 대처했다. 그리고는 이런 비유를 든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물건을 가져왔을 때 내가 받지 않으면 상대에게 되돌아 가듯이, 욕설도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상대에게 되돌아간다. "

대화는 쌍방이 말을 주고 받으면서 상대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가능하다. 무조건 트집만 잡고 공격하려고 한다면 대화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상대가 욕설을 할 때는 내 말을 수용할 태세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한다. 그런 이에게 대응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욕설 언쟁을 대화의 방법으로 삼는 이가 있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게 되고, 언쟁을 계속하다 보면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는 두 기능공은 1년간을 싸운 후에 아주 친하게 되었다는 예를 전한다. 그러나 그 경우엔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대화하는 것이고 인터넷은 그런 싸움을 벌이는 장소로 합당치 않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혜와 자비에서 나오는 위엄과 온화의 모양새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욕설을 삭이는 데 침묵은 좋은 방편이다.

석지명 <법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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