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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나라 미국 ‘개신교 대법관’ 사라지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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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개신교 일파인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 미국에서 개신교 대법관이 사라질 것 같다. 개신교는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로마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왔다. 개신교 내에서도 청빈한 생활을 강조하는 청교도들은 17세기 초 신대륙으로 건너와 미국 건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현직 대법관 9명 중 유일한 개신교 신자인 존 폴 스티븐스(90)가 다음달 사퇴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그는 고령으로 건강이 최근 크게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스티븐스 대법관은 올 초 4명까지 채용할 수 있는 보좌관 수를 1명으로 줄였다. 그가 사퇴할 경우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개신교를 믿는 대법관이 사라지게 된다.

현재 미 대법원의 대법관 9명 중 6명은 가톨릭 신자다. 2명은 유대교, 나머지 1명은 개신교를 믿고 있다. 미국인 중 개신교 신자는 전체의 51%로 절반을 넘는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비율상 개신교 대법관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과거에는 소수 종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가톨릭 진영에 대법관직을 할당하기도 했다. 소수 종교를 믿는 이들의 의견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상황이 역전됐다. 다수를 차지했던 개신교 신자 대법관이 점차 줄더니 2006년에는 가톨릭을 믿는 대법관이 과반수를 차지한 것이다.

현재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지난해 인준된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도 가톨릭 신자다. 지난 국정연설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을 비난하자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게 아니다”라고 혼잣말을 했던 사무엘 알리토 대법관도 가톨릭을 믿는다. 유대교의 경우 1916년 처음 대법관을 배출했으며 현재 2명의 대법관 신자를 갖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이 같은 대법원의 변화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종교가 판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WP는 다수의 가톨릭 신자 대법관으로 인해 미국 사회의 보수화 경향이 뚜렷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낙태 문제와 사형제 폐지 논란에 대해서는 이들의 종교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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