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명예교사제도 치맛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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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 K초등학교 3년생 어머니 高모씨는 새학기 들어 집 근처 L문화센터에 등록했다. 거기서 주1회 종이접기를 배운다. 학교에서 특별활동 시간을 맡아줄 학부모 명예교사를 모집하기 때문이다.

高씨는 "요즘 담임교사들이 특활을 맡아주는 학부모를 가장 선호한다기에 시작했다" 고 했다. 이 학교는 종이접기 말고도 수예.한문.일어.서예.미술 등을 학부모들이 가르친다.

미대 출신인 Y초등학교 2년생 학부모 崔모씨. 그는 월말에 있을 학급 환경미화 심사에 대비해 거의 매일 아들 학교에 나가 교실 치장을 한다. "덕택에 아들이 선생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더라" 고 崔씨는 자랑한다.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 '특기 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특별한 기능이나 경험을 가진 학부모들의 봉사를 통해 학교의 재정부담 없이 학생들에게 다양한 배울 거리를 주자는 특활시간. 그러나 그마저도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이라는 비뚤어진 자녀 이기주의로 퇴색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부모는 없는 특기를 대신해 "학교앞 '교통어머니' 로라도 나서겠다" 고 학교에 조른다고 한다. 사심 없이 봉사하는 다른 학부모들까지 그런 눈총을 받게되지 않을까 걱정마저 된다. 어느 고졸 출신 학부모는 "대학 나온 학부모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한다" 고 호소도 한다.

성역 없이 불어대는 치맛바람. 학생을 대리해 벌이는 경쟁이 가져올 폐해를 몰라서일까.

"학부모의 학교활동이 아이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한다면 안하느니만 못한 심각한 문제" 라고 연세대 조혜정(趙惠貞.사회학)교수는 진단했다.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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