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실패 예견된 '탁상 의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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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의약분업을 홍보하기 위한 공익광고협의회 광고에서 '지금 당장이야 불편하겠지만' 이란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었다. "

"의보 혜택을 안받을테니 제발 의보료도 안내게 해달라. "

19일 청와대 홈페이지(http://www.cwd.go.kr)의 게시판 '열린 마당' 엔 국민의 이같은 소리가 잇따라 올랐다. 의료보험 재정 위기와 의약분업 문제에 대해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9일 의약분업 자성론을 편 것에 대해서도 네티즌들은 "대통령이 (의약분업)책임을 자인(自認)했는데 그럼 대통령과 보건복지부의 월급부터 몰수해야 책임행정 아니냐" 고 거칠게 항의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문제가 최대 실정(失政)이자 국정기반 약화의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고 걱정했다.

金대통령은 지난해만 해도 자신감을 보였었다. "의약분업, 의료보험 통합을 차질없이 완수하라" 고 주문했고, 의료계 파업에 대해선 "집단이기주의" 라고 한때 강경대처를 지시했다. 12월엔 "1년 씨름했다.

다행히 의약분업을 확실히 하게 됐다" 고 단언했다. 올해 들어 "정부는 단단히 시험을 받고 있다" (1일 국민과의 대화), "내 책임이 가장 크다. 지금 보면 준비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1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고 후퇴했다. 대통령의 인식.진단이 출렁이는 사이, 보건복지부 등 해당 부처가 뒷짐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복지부의 개선책은 혼선을 거듭했고, 개선책 마련을 위한 보건의료발전특위는 19일에야 첫 회의를 열었다. 복지부는 의보재정수지 추정액을 '추가 지출없다' (1999년)→1조5천억원 적자(지난해 6월)→4조원 적자(3월)로 오락가락했다. 반면 의료 폐업사태로 인한 불편은 물론 의보료 상승(올해 직장의보료 20%, 지역의보료 15%)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떨어졌다.

들끓는 민심에 정치권은 부랴부랴 "의보료 10~15% 인상" (민주당), "의약분업 전면 재검토" (한나라당)를 대책으로 내놓았다. 이한동(李漢東)총리도 "최악의 상태" "엄청난 지탄대상" 이라고 토로했다.

정치권 한 인사는 "안이한 탁상정책 실험이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또 정권 부담으로 떨어지게 됐다" 고 지적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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