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표관료제' 확립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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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마침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공무원 인사가 특정 지역, 특정 출신학교에 편중돼 있다는 논란이 일어오던 중에 지난 주 금요일 우리 나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부 스스로가 이에 관한 조사결과를 전격 발표한 것이다.

***과거정권과 닮은꼴 人事

그동안 역대 정권들이 쉬쉬하며 덮거나 회피해오던 우리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의 실상을 국민에게 적나라하게 알리고 그 해결에 적극 나서고자 한 것이란 점에서 중앙인사위원회의 이번 발표는 매우 용기있고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쉬운 부분도 함께 발견된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공무원들이 보직되기를 희망한다는 1백20개의 선호 직위와 정무직의 경우 호남지역 출신 공무원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현 정부 들어 과거의 10~15%대가 25~27%대로 급증한 반면, 영남지역 출신 공무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급감했음(정무직의 경우 과거 40%대에서 25%로, 1백20개 선호 직위의 경우 과거 40~44%에서 38%로)이 확인된다.

인사위원회의 해석처럼 이렇게 됨으로써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정권 역사상 처음으로 공직의 지역배분 비율이 인구 전체의 지역간 비율에 근접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표관료제' 의 출범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이번에 발표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속도와 강도가 영남을 포함한 비호남 출신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너무 빠르고 크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과거 영남 정권들이 범했던 지역인사 물갈이 행위를 이번 정부도 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조사를 통해 밝혀진 것은 사실 아니냐" 내지는 "현 정부의 그런 지역인사 물갈이 행위에 대한 비판이 비등해지자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이번 조사를 하고 결과를 발표한 것 아니냐" 는 의구심 배인 비판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전체인구의 지역간 비율에의 접근이라는 설명으로 국민이 설득.공감할 것이라는 것은 희망이고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비호남 출신자들의 반감은 현실이다.

"오랫동안 차별받았으니 최소한 전체인구에서 호남이 차지하는 비율까지 만큼은 호남 출신으로 채워야 하고 그러니 다른 지역 출신 인사들은 자리를 떠나시오" 하는 식으로 하다가는 반목과 질시가 반복될 뿐이다.

호남 정권이 들어섰는 데도 비호남 출신 공무원들이 요직에 계속 발탁되고 영남 정권이 들어섰는 데도 비영남 출신들이 요직에 계속 발탁되는 것, 바로 이것이 대표관료제의 진정한 모습이요, 지역화합의 정수다.

중앙인사위원회가 내놓은 대책 속에 향후 공무원 인사에 있어 오히려 비호남 출신 공무원들에 대한 우대조치가 들어가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지역안배를 고려하다가 능력 있는 사람들을 역차별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둘째, 심각한 문제로 늘 제기돼 오던 사항들, 예컨대 청와대나 안기부 같은 정치적 권력기구라든가, 공기업 등 정부 산하기관의 장과 직원들 인사에서의 지역편중 문제, 그리고 장관이 바뀌면 그 부처의 요직들이 그 장관의 출신지역 인사들로 채워지는 문제에 관해서는 이번에 한마디 언급조차 없었다.

***지역안배만 좇으면 안돼

A를 B라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지만, A에 관해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B.C.D 세가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실수였든 의도적이었든 B와 C만을 이야기하고 D를 거론하지 않는 것도 책임회피 내지는 거짓말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중앙인사위원회가 발표한 향후 대책에는 이런 문제들에 관한 제2, 제3의 조사와 발표를 하겠다는 것이 들어 있었어야 한다. 그래야 중앙인사위원회가 대통령 직속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견지하는 기구라는 매우 귀중한 전통을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끝으로 수집된 원자료 전체를 공개하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실증적 조사결과 발표의 생명은 신뢰성에 있고 이 신뢰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제3자에 의한 확인가능성을 여는 원자료의 공개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와 같은 조사의 정기화와 조사된 원자료의 공개는 향후 대책에 포함될 필수사항이다.

황성돈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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