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수술후 작가회의 이사장 중도하차 이문구씨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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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안 좋은 것은 좋지않다고 똑부러지게 밝히면서,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잘 어울려 사는 우리 민족의 투박한 삶의 맛을 잘 버무려 전해온 소설가 이문구(李文求.60)씨가 최근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직을 중도에 사퇴했다.

지난달 받은 위암 수술로 당분간 요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999년 말 이사장에 취임한 이씨는 보수와 진보, 세대별.계파별로 나뉜 문단의 화합을 위해 특히 노력했다.

문인협회.펜클럽과 함께 3대문학단체가 공동으로 문인 복지와 화합을 위한 기금 조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성사단계에 있으며 북한으로 보낼 내복도 8만여벌이나 모아 놓았다.

의뭉스러우면서도 모든 사람 다 껴안는 그의 소설세계에 딱 들어맞게 이씨 또한 화합형이어서 범문단적으로 문단화합과 그로인한 한국문학 발전에 거는 기대도 컸었다. 그만큼 이씨의 중도 하차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문단 전체를 아우르며 모든 사람에게 높은 문학성과 양심적 활동을 인정받고 있는 이씨를 찾아 바람직한 문학과 문단활동에 대해 물었다.

- 평소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큰 병이 나셨나.

"건강에 너무 자신이 있었던 탓이다. 당뇨나 비만 등 중년이 넘으면 걱정되는 병이 내겐 전혀 찾아온 적이 없었다. 그래 건강을 과신해, 아니 건강에 대한 의식이 없어 호미로 막을 병을 이렇게 가래로 막는 꼴을 당했다. 그러나 당신이 보기에 지금도 이렇게 건강해 보이지 않는가. "

- 혹시 진보.보수로 명백히 갈린 문단에서 이 경향, 저 경향 다 아우르는 범문단적 버팀목으로서의 역할이 속병을 깊게 한 것은 아닌가.

"원래 낙천적인 사람이라 그런 것들에 속병이 날 이유가 없다. 또 내가 좋아서 그 양쪽 사람들하고 쭉 잘 어울려 온 것이지 무슨 목적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진보.보수를 의식해 서로를 가르고 패거리를 짓는 것은 그 동기가 불순하다. 기득권을 지키려 하거나 새로운 그 무엇을 얻으려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쪽입네' 하는 사람들은 어는 한 분야에든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문단 또한 그런 무리들은 이제 극소수일 따름이며 그런 문인들은 왕따 당하는 시대다. 무엇 하려 내가 병이 날 정도로 그렇게 신경을 썼겠는가. "

- 김동리.서정주 등 1세대 순수.보수 문인 스승 밑에서 문학 수업과 활동을 하다 참여.진보 문학단체의 대표가 됐다. 또 1966년 데뷔 이후 '한국문학' '실천문학' 의 편집자 등으로 문단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문단의 흐름과 문인 한사람 한사람의 행태를 한 눈에 꿰고 있다. 세대별 문단의 세태와 특징은.

"우리 선배 문인들은 색깔을 구분하거나 무리를 질 경우에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하물며 적대감이란 있을 수 없었다. 후배들이 그들의 문학에 대해 시비를 걸고 들어오더라도 다 받아들였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그런 후배들을 존경해 오히려 더 감싸안을 정도로 포용력이 넓었다.

그런 좋은 전통이 70년대까지 이어졌다. 80년대 이후부터 이런 문단의 덕성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흑백논리로 가차없이 선배.동료.후배 할 것없이 재단해 버렸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그 어느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차츰 문단이 자기중심주의로 빠지며 이제 신세대들은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의 문학은 모조리 부정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그들은 후배들을 기르려하지도 않는다. 선배 문인들이 보이던 선비의식은 이제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고 마치 문단이 시정잡배들의 집단이나 다름없이 돌아가고 있다. 80년대를 기준점으로 앞세대 문단이 대가족주의였다면 이후 세대 문단은 핵가족주의를 넘어 독신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

- 문단이 화합을 못이루고 이렇게 갈가리 찢겨지는 데서 오는 병폐는 무엇인가.

"안으로는 문학을 잃고 바깥으로는 독자를 잃는다. 서로 사상을 시비하고 평가 절하를 하다 급기야 인신공격까지에 이르러 문학에 대한 불신감을 조장한다면 어느 독자가 좋은 문학을 좋게 알아보고 읽겠는가. 결국 문학의 공멸을 초래해 문학 아닌 대중적 읽을 거리들이 좋은 문학 행세를 하게 될 것이다. "

- 어떻게 해야 문단이 먼저 화합을 이뤄 전사회적 화합에 모범을 보일 수 있겠는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생긴 문인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이제 그 태생적 목적을 용도폐기하고 발전적으로 해체해 다시 모여야한다. 5.16군사혁명 직후 문인 장악을 목적으로 문단 타율적으로 생긴 단체가 문인협회고, 그런 군부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생긴 단체가 민족문학작가회의다. 문학은 정치적 찬조물이나 도구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 문학은 정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런 역할을 자초해왔다. 거기에 대한 반성으로 먼저 두 문학단체는 발전적으로 해체한 뒤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문인들 스스로 서로를 감싸안아줄 때 문학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

-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으로서 지난 2년간 한국문학과 문단을 위해 꼭 이뤄내고 싶었던 일은.

"우선 문인복지기금을 만들려 노력했다. 대중문학이 아닌 순수.본격문학은 경제적 지원 없이 홀로 서기 힘들다. 해서 정부에서 출연받아 그 기금을 조성하려 했고 잘 되면 올해안에 국회에 그 법안이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은 3대 문인단체가 공동으로 추진했다. 지난 연대의 편가르기에서 벗어나 서로 뒤섞여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문단의 화합과 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

- 바람직한 문학을 위해 후배 문인들과 문단에 바라고 싶은 말은.

"한두 작품만으로 불쑥 일어서려는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문학은 브라운관에 반짝 떴다 금세 사라지는 TV 흥행물과 다르다는 것은 젊은 문인들도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평생 깊이를 탐구하며 나아가는 것이 문학이다. 상업성을 호도하기 위한 문학 저변확대를 명분으로 문학을 하향 평준화하지 말아야 한다.

문학은 문학이다. 정치나 상업성 등 그 어디에도 예속될 수 없다. 그런 문학을 위해 문단이나 출판사별로 모인 계파들은 문인에게 무엇무엇을 요구하며 피곤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런 문단활동은 문인에 대한 불명예이고 문학독자들과의 거리를 넓힐 뿐이다. "

- 건강을 회복하면 어떤 작품을 쓰시고 어떤 활동을 펼치시려는가.

"병 덕분에 40년 가까운 문단생활 중 처음으로 잘 쉬게 될 것 같다. 푹 쉬고 난후 무엇을 어떻게 쓰고 해야 할지 생각해 보겠다. "

글=이경철.사진=장문기 기자

<이문구씨 약력>

▶1941년 충남 보령 출생

▶66년 '현대문학' 등단

▶71년 '월간문학' 편집장

▶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발기인.간사

▶79년 '실천문학' 편집.발행인

▶99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소설집 '관촌수필' . '우리동네' . '장한몽' . '매월당 김시습' 등과 동시.동화.산문집 다수

▶한국창작문학상.만해문학상.동인문학상 등과 대통령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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