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이숙자씨 서울서 대규모 작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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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보리밭과 누드로 널리 알려진 한국화가 이숙자(59.고려대 미술학부 교수)씨가 7년만에 서울에서 대규모 작품전을 연다. 오는 21일~4월 3일 서울 정동 조선일보 미술관(02-724-6318)과 인사동 선갤러리(02-734-0458)에서 동시에 열리는 제 11회 개인전이다.

출품작은 40여점. '보리밭' '이브' 등 과거와 동일한 소재를 다룬 연작이 주종을 이루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브의 보리밭' 의 경우 과거에는 여체가 정물처럼 차가운 느낌을 주었던 데 비해 이번 작품들에선 관능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눈길을 끄는 변화는 훈민정음.석보상절 등의 옛 한글 판본을 배경으로 보리밭을 형상화한 새로운 시도.

보라와 초록.주황 등 색색의 만장처럼 드리워진 천 위에 한글이 새겨져 있고 이를 배경으로 바람을 받고 있는 누렇고 푸른 보리들이 힘찬 생명력과 힘을 느끼게 한다. 극도로 섬세하게 묘사한 보리의 수염 한올 한올, 보리알 한톨 한톨이 저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점은 예전 작품과 같다.

작가는 "그림을 그린 시기는 세계화의 광풍이 몰아치던 1997, 98년께" 라며 "정신없이 몰아치는 세계화의 바람 속에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자는 뜻에서 훈민정음과 석보상절을 찾게됐다" 고 설명했다.

'백두산' 은 작가 스스로 "혼신의 노력으로 매달렸다" 고 말하는 작품으로 99년부터 2년간 작업해 만들었다. 종이 바탕에 금가루와 돌가루를 칠해 완성한 가로 14m54㎝, 세로 2m27㎝ 크기의 대작이다. 1백50호 캔버스 8개를 연결했다.

99년 방북 때 북한쪽에서 올라가 본 백두산 천지의 위용을 담았다. 그는 "사진으로만 보던 백두산 천지에 발을 담그던 순간의 감회는 형언할 수 없이 컸다" 면서 "당시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지난 2년간 하루 10여시간씩 백두산의 신비를 형상화하는 작업을 한 결과" 라고 말했다.

재료로 순금분과 석채를 사용한 것도 시간이 흘러도 변색되지 말기를 바라서라고. 순금분은 2g에 5만원, 석채는 50g에 20만원씩 하는 고가의 재료여서 제작비도 만만찮게 들었다. 천지의 푸른 물을 칠하는 데만 1천5백g의 석채가 사용됐다.

훈민정음.백두산 등을 통해 민족정서.민족정기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작가는 "곧이어 단군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 제작에도 착수할 예정" 이라고 말했다.

재미 원로작가 천경자(77)씨에게서 미술을 배워 채색화 전통을 이어 온 작가는 80년에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와 중앙미술대전에서 잇따라 대상을 받아 미술계에 화제가 된 바 있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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