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性문제' 눈 뜨는 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여직원이 없는 사이 어떤 남성이 자신의 컴퓨터로 음란 사이트를 들여다 본다면 과연 성희롱에 해당될까요 아닐까요. "

지난 16일 오후 2시 국방부 제2회의실. 이날 초청강사로 나온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은 강의를 시작하자마자 이런 질문부터 던졌다. 한 수강생이 답변했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면 성희롱이 될 수 없겠지요. "

그러자 강사는 또 이렇게 물었다. "여직원이 자리에 돌아와 그 음란 사이트를 우연히 보게 됐고, 이때 명시적인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성희롱인가요 아닌가요. " "글쎄요…. "

초점이 좁혀지면서 질문도 점점 어려워져 갔다. 질문을 끝낸 강사는 '성차별 금지법' 과 '남녀 고용평등법' 등을 근거로 "지금까지 예로 든 모든 경우가 성차별 또는 성희롱에 해당한다" 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사는 "아직도 사회통념상 그것이 성희롱인지 전혀 모른 채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며 문화적 배경론을 지적했다. 강의를 들은 한 50대 중반의 간부는 "평소 무심코 해 온 나의 언행이 여성들에게는 성희롱으로까지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 소감을 말했다.

한 여군하사는 "오늘 강의가 아직도 성문제에는 무지한 군내 남성 간부들에게 좋은 계몽교육이 된 것 같다" 며 "늦었지만 다행" 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합참이 주관한 이날 강의에는 국방부.합참의 고위층을 비롯, 현역 장성 및 영관장교 등 2백여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주제가 '직장내 성희롱 예방' 인 만큼 전체 참석자의 30% 정도는 여군 및 여직원들이었다. 3월 현재 여군(장교.하사관)은 2천7백여명. 오는 2020년까지 7천명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특히 올해에는 창군사상 최초로 공군사관학교에서 여군 소위 18명이 임관해 2년 후면 여기서 전투기 조종사도 나오게 돼 있다. 해사와 육사도 내년부터 잇따라 장교를 배출하게 된다.

한국의 군도 이제는 더이상 남성들만의 독무대가 아니다. 남군(男軍)들이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여군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나머지 군을 떠나게 만든다면 이 또한 보이지 않는 전투력의 손실이 아니겠는가.

김준범 편집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