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장관 방북보따리 든 건 많은데 '글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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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4일 남북 탁구단일팀 합의 등 방북(訪北)성과 보따리를 푼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의 손에는 정작 합의문건은 쥐어져 있지 않았다.

모두 구두(口頭)합의인 데다 '원칙적 합의' '추진의사 확인' 등 원론적 내용이 많았다.

남북회담 전문가들은 이런 협상방식은 정부차원의 대북협상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서면합의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마당에 북측의 구두약속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우선 개성지역 육로(陸路)관광 합의는 그동안 현대측과 북한 아태평화위 사이에 논의되던 것을 당국간 약속으로 끌어올렸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관광특구 개방 등에서 보다 구체적인 북한의 해답을 이끌어냈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또 경의선 복원공사가 예정보다 늦어지는 공정을 감안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평(京平)축구도 원칙에는 합의했으나 논의는 나중에 하기로 한 것이나, 문화장관급 회담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면서 "잘되는 쪽으로 준비키로 했다" 고 했을 뿐 추후 일정도 잡지 못한 점도 문제다.

지난해 9월 처음 열린 국방장관회담의 경우 2차 회담을 '2000년 11월 중순 북한에서 연다' 고 서면으로까지 합의했지만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1998년 베이징(北京)남북 차관급회담 수석대표였던 정세현(丁世鉉)전 통일부 차관은 15일 "대북접촉에는 노련한 회담 전문가를 반드시 대동하고 합의결과를 정리해 도장을 받아두는 게 필요하다" 며 "북한과의 약속은 휘발성이 높은 만큼 서면합의를 통해 구속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고 조언했다.

이미 합의한 사항을 다시 확인하는 수준에 그친 항목도 적지 않다.

金장관은 "북측 한라산 관광단이 4월에 오기로 한 원칙을 재확인했다" 고 공개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9월 2차 장관급 회담에서 '9월 중~10월 초' 로 약속했다가 이를 지키지 않아 '2001년 3월' 로 고쳐잡았던 사안이다.

이미 양측 단체가 실무접촉을 통해 날짜를 논의 중인 태권도 교류도 다시 한번 약속받았다.

초청자인 김용순(金容淳)대남담당 비서는 못만나고 강능수 문화상을 제외하고는 차관.국장급 인물들과 상대를 바꿔가며 회담을 치른 점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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