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늘어난 틈새, 인터넷 고리채 극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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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출(貸出)전문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고리대금업을 하는 신종 사이버 사채영업이 극성이다.

30여개 정도로 파악되는 사이트 개설업자 중 상당수는 전국 규모의 조직망을 갖추고 공개적으로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특히 일부 업자는 신용불량자들에게 "은행대출을 받게 해주겠다" 며 급전을 제공한 뒤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채무자의 신원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등 탈법을 저지르고 있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대규모 조직을 가진 업자 중 일부가 자금을 범죄조직으로부터 받고 있다는 사채업계의 주장에 따라 이에 대한 수사도 함께 벌이고 있다.

◇ 연 30%의 고리〓鄭모(26.여)씨는 지난 1월 사채전문 O사이트를 통해 1천5백만원을 대출받아 신용카드 연체대금 1천2백만원을 갚았다. 하지만 鄭씨는 23%의 고금리를 견디지 못해 친구에게서 돈을 다시 빌려야 했다.

은행연합회가 지난 7일 발표한 신용불량자 숫자는 2백40여만명. 대부분 신용카드대금 연체 등으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이들이 사이버 고리대금업자들의 주고객이다.

업자들은 사이트를 보고 접속해온 대학생.직장인들 중 신용불량 등으로 은행.신용카드 거래가 불가능하거나 급전이 필요한 젊은층을 공략한다. e-메일과 휴대폰을 통해 대출을 요청하면 인감증명.주민등록증 사본 등 서류를 받아낸 뒤 20~30%대의 연리로 대출해준다.

◇ 블랙리스트 공개〓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이들 업자 중 대출연체금을 제때 갚지 못한 회원의 신원을 공개한 M사이트의 운영자를 소환할 예정이다. 연체회원의 이름.사용자 ID.e-메일 주소와 네자리 숫자를 뺀 주민등록번호.연체 내용을 공개한 혐의(개인비밀보호법 위반)다.

경찰은 다른 3~4개의 사이트 운영자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경찰은 또 D사이트가 한 신용불량자 고객의 연체대금을 대신 갚아주고 그의 명의로 은행에서 다시 대출을 받아 이미 갚아준 돈과 30%의 선이자를 뗀 금액을 빌려줬다는 제보를 받고 사채업자와 은행 직원과의 연계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경찰은 "D사이트의 경우 전국에서 활동 중인 사채업자 수백명의 휴대폰 번호.e-메일 주소가 등록돼 있어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 밝혔다.

◇ 자금 출처도 수사〓서울 명동의 사채업자 金모(45)씨는 "인터넷을 통한 기업형 사채업자들 때문에 기존 사채업자들의 영역이 위협받고 있다" 고 말했다. 경찰은 특히 최근 일본 범죄조직의 대규모 자금이 국내 사채시장에 유입됐다는 정보를 입수, 이들 신종 고리대금업자들에게 돈이 흘러들어갔는지 여부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대출 사이트 관계자는 "은행의 대출금리 인하와 주식시장 침체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자금이 새롭게 형성된 온라인 사채업에 모인 것일 뿐" 이라며 "합법적인 영업" 이라고 말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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