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풍치 좋아 작품 구상 술술 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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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공기 좋고 조용해서 작품구상에 그만이죠."

3년전 '평창동 미술인'에 합류한 화가 임옥상(林玉相 ·51)씨.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선봉가로, 지금은 '당신도 예술가'라는 시민참여 미술운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林씨는 "계절 변화를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이곳에 산다는 건 예술가로서 큰 축복"이라고 예찬했다.

처음 마련한 작업장을 그로리치 화랑에 내준 林씨는 지난해 12월 가나아트센터 맞은편의 가정집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전세값이 만만치 않았지만 林씨는 이것을 '공격적 경영'이라고 설명했다. 미술관이 바로 코앞에 있고 주변에 사는 미술인과 교류를 생각하면 오히려 이득인 셈이라는 것.

매일 아침 북한산 보현봉까지 올라가 기지개 한번 켜고 인근 청담 약수터에서 물떠오는 것이 林씨에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그러나 민중의 삶을 예술로 표현했던 林씨 또한 "너무 좋은 것만 보다보니 삭막한 현실과 괴리를 느끼기도 한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林씨는 그래서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제2작업장을 오가며 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물을 통해 초심(初心)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고 한다.

林씨 이외에도 평창동에는 20여년 전부터 미술인들이 속속 자리를 잡아 현재 1백여명이 거주하고 있다.이종상(李鍾祥)서울대 박물관장, 오경환(吳京煥)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원장,서울대 윤명로(尹明老)교수 부부 등 내노라하는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또 화랑 학고재 우찬규(禹燦奎)대표와 가나아트센터의 이호재(李皓宰)대표,판화가 김창렬(金昌烈)씨, 한국화가 박대성(朴大成)씨 등도 이곳에 살고 있다.올봄에는 김흥수미술관 개관에 맞춰 서양화가 김흥수(金興洙)씨도 이곳으로 옮겨올 예정이다.

미술계 인사들이 평창동에 모여든 것은 주변 경관이 수려하고 조용한데다 땅값이 강남의 10분의1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했기 때문.

평창동은 지력이 세다는 이유로 한때 사업가나 일반인이 들어와 살기를 꺼려했던 반면 '기가 세다'는 예술인들은 이곳에 들어와 일이 술술 풀렸다는 얘기도 있다.

27년째 살고있는 서울대 한승재(韓勝才 ·서양화과)교수는 "땅값도 싸고 풍치도 좋아 예술인들이 몰려든 것 같다"며 "이사올 때는 주변에 나무와 공터 뿐이었다"고 회고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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